밀과 농경

성장

곡물은 그리스의 주된 식단이었습니다. 호메로스는 자신의 동포를 가리켜 ‘빵을 먹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죠.

곡물 농사는 아주 까다로운 작업이었습니다.

여름이 건조했던 탓에 인공 관개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랬기에 농부들이 작물에 물을 댈 방법이라곤 비 밖에는 없었죠.

따라서 농부들의 파종과 수확은 매우 한정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 크기의 농가에선 매년 농지의 절반에만 작물을 심었을 겁니다.

나머지 절반의 농지는 지력의 소모를 막기위해 아무것도 심지 않았겠죠.

시인 헤시오드는 파종하기 가장 좋은때는 가을이며 수확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5월이라고 했습니다.

다행히도 시기를 놓친 농부들에게도 봄에 기장을 심을 기회는 남아있었습니다.

보이오티아의 아스크라 마을 출신인 헤시오드는 농부 출신의 시인이었습니다. 기원전 7세기에 그는 신들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묘사한 서사시, 신통기를 편찬했습니다.

헤시오드는 세상살이의 방법을 노래한 ‘일과 나날’이라는 시도 지었죠. 이 시에는 파종과 수확 시기에 대한 개요를 그려줬던 상세한 농경 달력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상적인 결혼 시기 등과 같은 주제도 다루고 있었습니다.

헤시오드의 시는 고대 시기에 큰 유명세를 떨쳤으며, 헤로도토스는 그리스인들에게 신에 대해 가르친 인물이라며 헤시오드를 추켜세웠습니다.


경작

밭에 작물을 심으려면 우선 땅을 3번 갈아엎어야 했습니다.

잡초를 제거하기위해 봄에 1번, 토양에 공기가 잘 통하도록 여름에 또 1번, 촉촉한 땅에 씨앗을 심기위해 겨울에 마지막으로 1번 말이죠.

쟁기는 2마리의 황소가 끌었고, 씨앗은 손으로 심었습니다.

씨앗을 심고나면 괭이를 든 소년이 흙을 덮었죠. 배고픈 새들이 집어먹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파종이 끝나면 농부들은 밭에 물을 대줄 겨울비가 내리기를 기다렸습니다.

또한 농경의 여신 데메테르와 그녀의 딸 페르세포네에게 기도를 올리며, 다가올 봄에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기를 기원했죠.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는 제우스의 누이였습니다. 그녀의 딸 페르세포네가 자신의 동의도 없이 하데스의 신부로 간택되자, 데메테르는 제우스가 페르세포네의 해방을 약속할때까지 모든 작물의 생장을 멈춰버렸습니다.

데메테르의 행위는 기근으로 이어졌고, 제우스는 동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우스는 페르세포네가 반년동안은 저승세계의 여왕으로, 나머지 반년동안은 어머니와 함께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곡식을 심는 행위의 연장선 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곡식 또한 싹이 돋을때까지는 지하에서 지내야하니 말입니다.


수확

봄이 되면 굽은 날붙이인 낫을 사용해 곡물을 수확했습니다.

수확꾼들은 바람을 등진채 작물 밭을 거닐며 줄기를 잘라냈습니다. 수확꾼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잘린 볏단만 남았죠.

수확이 끝나면 볏단은 탈곡장으로 옮겨졌습니다.

동물 제물이 고대 그리스의 종교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곡물에도 중요하고도 신성한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동물 제물을 바칠때면 동물의 머리뿐만 아니라 굽고 있는 고기 위에도 알피타라는 보릿가루를 뿌렸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빵처럼 ‘피가 없는’ 제물을 신들에게 바치기도 했습니다. 구워낸 빵의 모양은 신이나 의식의 종류에 따라 정해져있었고, 치즈, 견과류, 꿀, 곡물, 말린 과일 등을 재료로 썼습니다. 일례로, 아테네인들은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암피폰이라는 특별한 치즈빵을 바쳤죠.

또한, 그리스인들은 농사, 사냥, 낚시로 얻은 ‘첫번째 수확물’인 아파르카이를 신을 기리는 의미에서 바쳤습니다. 그리스인들은 풍요를 기원하며 봄에 수확한 밀과 보리의 아파르카이를 데메테르에게 바쳤습니다. 사람들은 아파르카이로 신을 기리지 못하면 신의 분노를 사 끔찍한 일이 생기고 만다고 믿었죠.


목축

축산업은 그리스의 농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농부들이 키우는 가축은 대개 소, 당나귀, 양, 염소, 돼지, 개, 거위, 닭이었습니다.

가축들은 보통 목초지에서 풀을 뜯어먹었지만, 농가에서 수확한 곡물 일부, 손상된 과일,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먹이기도 했습니다.

가축을 기르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동물의 배설물은 거름이 되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데 쓰였고 방목을 통해 잡초를 제거할 수 있었죠.

아르카디아는 신 판의 고향으로 알려진 산악지방이었던 만큼, 농부들도 소보다는 양이나 염소를 더 많이 키웠습니다.

농가에서 동물들을 길렀던 이유는 그들의 노동력과 부수적인 생산물을 얻기위해서였습니다.

쟁기나 마차를 끄는 등, 농가에서 이뤄졌던 중노동은 황소나 당나귀의 몫이었습니다. 한편 양과 염소는 고기를 위해 키웠지만, 이들의 젖은 치즈의 재료이기도 했죠. 잡식성인 돼지는 잔반을 처분했고 개는 목동을 돕고 다른 동물을 지켰습니다.

소, 양, 염소, 그리고 돼지는 신들을 위한 제물로 바치기도 했습니다.


도구

대부분의 농기구는 직접 나무로 만든 도구들이었습니다. 이따금 끝에 철을 입힌 것도 있었고요.

그 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도구는 쟁기 몸, 연결봉, 멍에를 포함해 다양한 부품으로 구성된 쟁기였습니다.

그 외에도 땅을 갈때 썼던 두갈래 괭이, 땅을 파고 잡초를 뽑는데 썼던 도구도 있었습니다.

아테네에서 토지의 소유와 생산량은 시민의 정치적, 사회적 지위를 반영했습니다. 시민은 재산의 등급에 따라 분류되었으며, 최상위 계층은 연간 최소 500부셸을 생산했고 최하위 계층은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스파르타에서는 스파르타 시민들에게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했고 작물 재배는 농노가 보조했습니다.


곡물 빻기

농부들은 거둬들인 볏단을 탈곡장으로 가져가 낟알을 분리했습니다.

탈곡장 중앙의 말뚝에 소나 당나귀를 묶어 주위를 맴돌게 한 뒤, 발굽 아래로 볏단을 던졌죠.

가축들이 밟으면 껍질과 알맹이가 분리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키질을 하기 위해 알맹이를 모았습니다.

키질은 비교적 무거운 곡물 알맹이와 겨의 분리를 돕는 작업이었습니다.

키질은 나무 삽으로 곡물을 던져올리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곡식이 떠오르면 가벼운 겨는 바람에 날아가고 더 무거운 곡물만 남았죠.

낟알에 남은 겨는 리크논이라는 나무 바구니에 담아 던져올리면서 제거했습니다. 곡물을 걸러내는 작업은 깨끗한 낟알만 남을때까지 반복되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곡물을 사용해 다양한 음식과 음료를 만들었습니다.

알피타라는 거친 보릿가루는 물, 우유 혹은 포도주에 뿌려 영양가가 풍부했고, 약용 물약으로 쓰이기도 했던 키케온을 만드는데 쓰기도 했습니다.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의사들은 페니로열을 첨가한 키케온을 여성들에게 처방했고,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를 기렸던 엘레우시스 비의에 가입하는 의식에서는 키케온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알피타는 프티사네라는 약용 음료의 제작에도 사용되었습니다.

한편 크리몬은 크리마티아스라는 빵을 만드는데 사용된 굵은 밀가루였습니다. 갈지않은 밀인 아밀로스는 끓인 뒤 젤리 정도의 농도를 띤 녹말 푸딩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보리로 맥주를 만드는 법을 알았지만, 이집트인들과는 달리 맥주를 즐기지 않았고 포도주를 선호했습니다.


밀가루 만들기

곡물가루를 만들때 사용했던 보리는 다른 곡물과는 달랐습니다.

탈곡만으로는 보리껍질을 완전히 분리할 수 없었던 관계로, 프리게트론이라는 특별한 도구를 사용해 보리를 구워야했습니다.

구운 보리는 절구와 절굿공이로 빻았습니다.

빻아낸 곡물은 손절구나 맷돌을 사용해 가루를 냈죠.

곡식을 가는 작업은 지루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분위기를 살리기위해 노동요를 불렀던 것도 그래서였죠.

완전히 갈아낸 보리를 코스키논이라는 버드나무 바구니에 담아 걸러내면 비로소 사용할 준비를 마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 식단에서 주식으로 삼았던 2가지 곡물은 보리와 밀이었습니다. 사실상 고전기 그리스인들의 식단은 대략 70~75%가 곡물이었죠.

알레우론이라는 밀가루는 아르토스라는 빵을 굽는데 사용됐지만, 그리스인들은 알피타라는 보릿가루를 물, 우유 혹은 기름과 반죽하여 간편히 섭취할 수 있는 마자라는 죽 혹은 납작빵을 만들었습니다.

스파르타의 소년들은 식사가 끝나고 기름에 적신 보릿가루 빵을 월계수잎으로 감싼 캄마타를 먹었습니다. 스파르타의 소년들은 아침으로 티가니테스라는 이름의 팬케이크를 먹기도 했습니다.

그리스의 빵은 정말이지 다양했습니다. 아테나이오스는 ‘철학자들의 저녁’에서 70종 이상의 빵을 열거하기도 했습니다.


저장과 운송

곡물 창고는 곡물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어둡고 건조하고 서늘하면서도 환기가 잘 돼야 했습니다.

헤시오드는 곡물을 보관하는 최선의 방법은 신화에 등장했던 판도라의 상자 같은 피토스에 담아두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고고학적 자료에 따르면 그리스인들은 나뭇가지를 엮어 작은 벽을 올린 구조물에 곡물을 저장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농가에서는 1년동안 섭취할 수 있을 정도의 곡물과 다음해에 사용할 종자를 보관해야 했습니다.

잉여 곡물은 흉년에 대비해 저장해두거나 시장에 팔아 이윤을 남겼습니다.

모든 땅을 개인이 소유했던 것은 아닙니다. 성소는 성지를 아우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성지는 신관에 의해 경작되거나, 다른 사람에게 임대하거나, 완전히 방치해둘 수도 있었죠.

땅의 이용에 관련된 규칙도 종종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알리아에 있던 아테나 성소를 방문하는 이방인은 하루 밤낮동안 동물 1마리에게 풀을 먹일 수 있었지만, 하루가 지나면 벌금을 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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