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와의 전쟁

오스트리아는 프랑스 북쪽에 위치한 근린국 중 하나였다.

─그 사이에도 낀 나라들이 있지만 일단 이웃나라는 맞다고 치고. 앱스테르고가 고증을 잘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는 했지만… 이젠 지리 정보까지 틀리냐? ‘오스트리아는 현재 벨기에가 된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당시에는 프랑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명확하게 썼어야지!─

혁명에 이르기까지의 길은 꽤나 험준했다. 프랑스 왕이 오스트리아 여자와 결혼까지 했지만 양국 관계는 나아지지 않았다. 왕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마리 앙투아네트의 입김이 너무 세다는 소문이 돌았다.

1792년, 입법의회에서는 전쟁을 일으켜 문제─프랑스 측은 이걸 ‘혁명의 전파‘라고 불렀지. 강력한 정치적 소용돌이였어.─를 외부의 적에게 돌리면 좋을 것으로 판단하고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군중이 파리의 튈르리 궁을 공격하기 전까지 전쟁은 서서히 진행되었고, 오스트리아는 프랑스를 침공할 계획을 세웠다. 파리에서 가까운 베르됭이 쉽사리 무너지자, 파리의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그래서 9월 학살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프랑스 군의 저항도 거셌다. 9월 20일, 발미 전투에서 프랑스 군은 오스트리아 군을 격퇴했다. 전투는 프랑스의 대승리로 끝났고 오스트리아 군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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