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페인

Cap 2016-02-25 21-36-51-406페인은 영국 출신으로 미국 독립전쟁 당시 <상식>이라는 소책자를 출간, 식민지 군과 주민들에게 독립의 열망을 불어넣었다. 원래는 코르셋 제조업자로 퀘이커 교도이자 사략선을 타기도 했던 페인은 열정적인 비난을 퍼부어 당대의 정치사상계를 뒤집어 놓았다. 미국 독립전쟁 후에는 급진사상가로서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에 대해 에드문트 버크의 지적 보수주의와 충돌했다. 페인이 혁명을 옹호하기 위해 쓴 책 한권 분량의 글 <인간의 권리>는 영국에서는 중상모략에 가까운 비난을 받았으나 프랑스의 군주제 반대자들에게는 지적 원조와도 같았다. 영국에서의 비난이 거세지자 페인은 파리로 피신했고, 프랑스는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특히 지롱드파가 그러했다. 프랑스에서 그는 콩도르세와 함께 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명예 프랑스 시민의 지위를 받은 페인은 국민 공회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프랑스어는 전혀 하지 못했음에도 공회에서 행해지는 연설을 열심히 경청했다. 그는 루이 16세의 처형에 공공연히 반대하며 미국으로 추방시키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후에 로베스피에르는 페인을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고, 페인은 간발의 차이로 단두대행을 피했다. 말년에 미국으로 돌아갔으나 무신론자라는 비난 속에 죽을때까지 손가락질을 받았다.

─단두대는 피했지만 미국에서 죽었잖아. 죽음보다 모진 운명도 있다는 최후의 증거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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