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알렉상드르 뒤마

ACU_Thomas_Alexandre_Dumas삼총사와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작가로 유명한 아들도 이름이 알렉상드르 뒤마라서 혼동하기 쉽다. 물론 손자도 춘희로 유명한 알렉상드르 뒤마이다. 이 알렉상드르 뒤마는 프랑스의 하급 귀족인 알렉상드르-앙투안 다비 드 라 파일르트리 후작과 아이티의 흑인 노예였던 마리-케세테 뒤마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후작은 아들─그런데 사실은 아들을 노예로 팔려고 했던 거야. 그래야 프랑스에 합법적으로 데려올 수 있었으니까. 끔찍한 얘기지만 역사적인 사실이지. 이렇게 코멘트를 달고 또 그걸 읽는 것도 그런 세부적인 사실이 중요해서 아냐?─과 함께 1776년 아이티에서 파리로 돌아왔다.

뒤마는 180cm가 훌쩍 넘는 키에 두려움을 모르는 남자로 성장했다. 이등병 신분으로 혁명군에 입대하면서, 낮은 계급의 병사가 되는 것이 가문의 수치가 되리라는 우려 때문에 어머니의 성을 따르게 되었다.1)원래 귀족은 장교 계급으로 군에 입대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뒤마는 혼혈이었기에 그런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이유야 말 안해도 뻔하지!─

하지만 뒤마는 뛰어난 능력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 장군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그는 ‘검은 군단2)자유 유색인으로 구성되었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에서 생조르주3)역시 혼혈로 ‘검은 모짜르트’라고 불릴 정도로 탁월한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다. 휘하의 부사령관을 지냈으며, 나중에 사령관으로서 알프스 부대를 지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말년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의 불화 때문에 불행했다. 1799년 포로가 되어 감옥에 갇혔을때 보나파르트는 뒤마를 구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고, 결국 뒤마는 굶주림으로 병든 몸이 되어 간신히 귀국했다. 군인 연금도 받지못했던 그는 1805년 4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각주   [ + ]

1. 원래 귀족은 장교 계급으로 군에 입대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뒤마는 혼혈이었기에 그런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이유야 말 안해도 뻔하지!─
2. 자유 유색인으로 구성되었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3. 역시 혼혈로 ‘검은 모짜르트’라고 불릴 정도로 탁월한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다.

댓글 남기기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