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드 보넷

출생 1688년, 바베이도스
사망 1718년, 노스캐롤라이나

바베이도스의 어느 부잣집에서 태어난 스티드 보넷은 편안하고 유쾌한 일생이 예정된 듯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영향력이 있고 성공한 농장주의 아들이었으나, 7살의 나이에 부모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비극적인 인생이 시작되었다. 고아가 된 스티드는 이때부터 우울감에 시달렸다.

부모를 잃은 충격은 400에이커에 달하는 사탕수수 농장을 물려받은 것으로 어느 정도 완화 되었고, 10대 후반이 되었을 무렵, 이미 스티드는 농장의 수익성을 부친이 경영하던 시절로 복귀시켜 놓았다. 그는 젊은 나이에 결혼하여 되도록 빨리 가정을 꾸렸으나, 이른 바 ‘마음의 혼란’ 때문에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위안이나 안식을 찾지 못했다.

이런 그의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장남이 아주 어린 나이에 죽어버렸고, 더욱 커진 슬픔은 그를 안절부절 못하게 했다. 스티드는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바다로 나가 전세계를 항해하며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속박이 없는 삶을 누리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OG : 뭔가 그럴싸한 영웅담이 될 것 같은데. 이 남자 나중에 영웅이 되는 거야, 아니면 악당이 되는 거야?)

(ML : 그런 거 없어.)

29살 생일이 다가오자, 불안함이 그를 다시 덮치고 만다. ‘결혼에서 느꼈던 불편함’은 ‘마음의 혼란’을 야기했고, 스티드는 그가 항상 꿈꿔왔던 삶을 시작할 때라고 마음먹는다. 그는 막대한 자산을 쏟아부어 배를 사거나 직접 만들고자 했다. 그는 소형 범선에 ‘리벤지 호’라는 이름을 붙인다.

위안을 받고자 그는 진짜 남자로서의 인생을 즐겼다. 선장실에 서재를 만들고, 비단 잠옷과 벨벳 상의 프록 코트와 함께 옷장을 온갖 총기로 채우기도 했다. 1717년이 끝날 때쯤 배가 완성되었다. 그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닻을 올렸다. 그리고 몇개월 안에 영국 식민지에 도착할 것을 기대하며 바베이도스 북쪽으로 항해를 시작한다. 그는 평생 그의 가족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스스로 ‘에드워드 선장’이라는 별명을 붙인 후 첫번째 보상을 기대하며 서인도로 떠난다. 그러다 커다란 스페인 전함을 만나게 되는데, 선원들은 어리석게도 전함을 상대로 공격을 감행한다. 결국 짧은 교전 끝에 보넷 배의 선원 절반 가까이 죽거나 부상을 입는다. 이 와중에 기적과도 같이 리벤지 호는 탈출에 성공하고 보넷은 그가 알고 있는 유일한 장소, 피난처를 제공할 나소로 키를 돌린다.

악명 높은 해적의 공화국, 나소에서 스티드는 대츠 선장과 만나 친구가 된다. 대츠 선장은 최근 검은수염이라는 이름으로 악명을 떨친 유능한 선장이었다. 대츠는 보넷을 설득해 리벤지 호를 접수하고 스티드는 기꺼이 자신의 선실로 물러난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둘은 검은수염이 앤 여왕의 복수라 이름 붙인 배를 얻기 전까지 몇달을 같이 항해한다.

처음에는 잠시 보넷의 배도 함단에 껴주었지만 갑자기 대부분의 선원과 함께 그 배를 내치고 만다. 보넷은 다시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난다. 아마 검은수염의 보호 아래 꽤 많이 배웠다고 생각했던지 보넷은 해적 행위를 위탁 받고 수수료나 챙길 생각으로 덴마크령인 세인트 토마스 섬으로 향했다. 그러나 선원들의 꿍꿍이는 달랐다. 일단 해적질에 빠지자 스티드 배의 선원들은 모든 보상을 쓸어모았고 몇달 뒤 노스캐롤라이나 케이프 피어 근처에서 사로잡히고 만다.

스티드가 재판을 기다리고 있던 중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착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고자 찾아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소용이 없었고, 탈출 시도마저 실패하자 1718년 12월 결국 스티드는 교수대로 향한다. 교수형 집행인이 그의 목에 올가미를 씌우는 순간 그는 자비를 구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런 비참한 모습에 많은 이들이 같이 눈물을 흘렸지만 그를 구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신사 해적’은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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