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의 교육

스파르타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그리스 도시입니다.

벽이 없다는 점에서 당대의 다른 도시들과는 차별화되는 곳이었죠.

스파르타는 공통된 정치, 군사, 종교적 생활을 영위했던 인접한 네 마을, 피타나, 림네스, 메소아, 그리고 키노소우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메세니아인들과 2번의 전쟁을 벌인 후, 도시의 영토는 더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기원전 5세기 경의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절반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12세기에 에우로타스 계곡에 정착한 도리스인은 기원전 10세기 경 스파르타를 세웠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스파르타는 라코니아의 에우로타스 왕과 라케다이몬 왕의 부인 사이에 태어난 딸이라고 합니다. 스파르타라는 도시 이름은 그녀의 이름을 따서 명명 되었지만, 도시는 라케다이몬이라고 불리기도 불리기도 했죠. 어쨌건, 스파르타는 라케다이몬인들의 수도로 기능했습니다.


교육의 중요성

아고게는 스파르타 남자아이들의 군사 훈련과 교육을 담당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전장에 나설 수 있는 사내를 길러내는 것은 도시의 주요 목표 중 하나였습니다.

소년들은 7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훈련을 시작하여 30살에 교육을 마칩니다.

스파르타의 유아들은 태어나는 즉시 나약하게 태어났는지 검사를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만약 병약하다고 여겨졌을 경우에는 협곡에 던져버렸다고도 하죠. 하지만 이 정보는 아직 확실히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건강한 소년들은 훈련을 받기에 적합하다고 간주되었습니다.

나이가 차면, 아이들은 가족과 떨어져 국가를 섬기도록 배정받았습니다.

그들의 교육과정에는 읽기, 쓰기, 심지어는 음악까지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대개 소년들을 능률적인 병사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거친 군사 훈련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아고게는 세 주기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7~12세까지의 소년기, 12~20세까지의 청소년기, 20~30세까지의 성인기로 나뉘었지요.

각각의 주기는 심신을 단련할 수 있도록 다양한 훈련을 포함했습니다.

스파르타 교육 체계를 조직한 것은 전설적인 스파르타의 입법자 리쿠르구스의 업적이라고 합니다.

아고게 체계는 스파르타 젊은이들의 교육과 사회화를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스파르타 시민이 되기 위한 정치적 필요조건이기도 했습니다. 중도 탈락했거나 참여하기를 거부한 경우, 스파르타 시민권을 완전히 박탈했죠.


레오니다스 조각상

스파르타는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전쟁에서 페르시아인들을 몰아내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스파르타인들은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레오니다스 왕을 높이 평가합니다.

스파르타에서는 전장에서 죽은 레오니다스가 훌륭한 죽음을 맞이했노라고, 그리고 모든 스파르타인들이 귀감으로 삼을만한 용맹의 덕목을 보여줬다고 여깁니다.

도시 전체가 공유하는 기억에 그의 용맹이 이상적으로 각인 되었으며, 아고게에서는 이 덕목을 주로 함양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레오니다스의 무덤은 칼키오이코스 성소 근처에 있었습니다. 테르모필레에 있었던 레오니다스의 유골을 수습하여 스파르타로 가져와 안치한 무덤이었죠.

레오니다스의 영웅적인 죽음을 기리기 위해 스파르타인들은 연례 연설을 펼쳤고, 시민들만 참가할 수 있는 특별한 경기에서 경합을 벌였습니다.


교육의 첫번째 단계

아고게의 첫번째 주기는 7~12세까지의 소년들에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각각의 소년들은 머리를 밀고 가벼운 복식을 입었습니다.

소년들은 어딜가나 맨발이었고, 하루가 멀다하고 에우로타스 강을 헤엄쳤으며, 갈대 위에서 잠을 자고 아르테미스 오르티아의 교단 의례에 참여했습니다.

소년들은 ‘무리’, 혹은 아겔라이로 조직되어 더 나이 많은 청소년들의 감독을 받았습니다.

12세가 되면 소년들은 아고게의 두번째 주기에 접어들게 되고, 시민 병사들의 공동체로 통합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스파르타의 어린 소녀들도 아고게와 유사한 교육에 참여했지만, 그 강도는 덜했습니다. 소녀들은 음악과 무용 훈련뿐만 아니라 달리기와 레슬링 훈련도 받았죠. 이들은 장신구나 향수로 몸을 꾸미지 않았으며, 나머지 그리스 세계의 여인들과 비교했을때, 대체로 더 큰 자유를 누렸습니다.


병영

아고게의 두번째 주기는 12~20세에 접어든 소년들을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20세에 도달한 젊은 남성들은 에이레네스 자격을 부여받아 공식적으로 스파르타군의 중장보병으로 복무할 수 있게 됩니다.

스파르타 남자들은 30세 전까지 시스케니아라는 집단 거주지에서 생활합니다.

22세부터는 가정을 꾸릴 수도 있었지만, 결혼 적령기로는 30세가 더 적절하다고 여겼습니다.

스파르타의 사내는 장로, 그러니까 게론테스로 여겨지게 되는 60세가 될때까지 군에 복무했습니다.

그러나 62세를 일기로 전장에서 죽었던 스파르타의 왕 아르키다모스 3세처럼,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군에 복무했다고 합니다.

아고게에서는 온갖 종류의 특이한 교육을 장려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도둑질이었습니다. 아고게에서는 끼니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훔칠 것을 어린 소년들에게 장려 했으며, 잡혔을 경우에는 호된 체벌을 가했습니다.

또 하나의 특이한 교육 관습은 크립테이아로, 18세의 정예 스파르타인에게 칼과 기본 장비만을 주고 홀로 내보냈습니다. 이 기간의 스파르타 청년들은 대개 헬로트1)농노 사냥과 학살을 목적으로 삼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 훈련이 기원전 460년에 벌어진 농노 반란에 대한 스파르타의 대응책이었다고 여겼지만, 크립테이아는 기원전 7세기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보입니다. 반면 플라톤은 스파르타 청년에게 은밀 행동과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크립테이아를 시행했다고 했죠.

아고게의 진행 과정은 머리카락과 수염과도 관련이 있었습니다. 20살이 된 스파르타인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를 수 있었고 30살이 되면 드디어 수염을 기를 수 있었지요.


시스시티온

스파르타의 성인 남성들은 시스시티아라고 하는 공동 식사에 참여했습니다.

참여한 스파르타인들은 달마다 다양한 음식을 기부했으며, 고기를 구매할 소량의 돈을 지불했습니다.

각각의 장정에게 1인분의 식사를 배급했지만, 왕들에게는 예외로 2인분을 배급했습니다.

시스시티아 참석은 이 집단에 속할만큼 여유가 있는 스파르타인 전원에게 부여된 의무였습니다.

크세노폰과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시스시티아는 시민들 사이의 평등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자기 절제와 스파르타 사회의 검소함을 보여준다고도 하죠.

하지만 사실, 시스시티아는 빈부간의 격차를 키웠을 뿐입니다.

공동 음식을 기부하지 못하는 자들은 식사를 공유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시민권 또한 상실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공동 식사는 다른 그리스 도시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지만, 라케다이몬의 이념이나 스파르타의 시민권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스시티아는 독특했습니다.

시스시티아는 하루에 3번 열렸습니다. 스파르타인들은 아침 식사2)아크라티스마로 빵과 포도주를 먹으며 아침을 시작했고, 이후 점심3)아리스톤과 저녁4)아이클론을 먹었죠.

공동 식사 식단에는 밀가루, 포도주, 치즈와 무화과가 포함되었지만, 스파르타에서 가장 유명했던 음식은 고기와 돼지의 피로 만든 조모스5)검은 국였습니다.

각주   [ + ]

1. 농노
2. 아크라티스마
3. 아리스톤
4. 아이클론
5. 검은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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