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르본

ACU_base_de_données_Sorbonne소르본이라는 이름은 너무나 유명하지만, 정작 루이 9세의 고해 신부이자 최초의 문화 옹호자로 소르본 대학을 설립했던 로베르 드 소르본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거 참 망신 뻗치는 일 아닌가? 마치 하루 종일 헤이스팅스를 쏘다니는 사람이 나에 대해서 요만큼도 생각 안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 자신이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신학 박사가 되기까지 고생을 했기에, 자신처럼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루이 9세는 소르본에게 자신이 소유했던 건물 몇채를 주었고, 소르본은 나중에 이 건물들을 이용하여 학교를 세웠다. 그로부터 3세기 후, 리슐리외 추기경은 ‘소르본 대학’이 쇠망해 가는 것을 보고 재건 계획을 세웠다. 1629년 추기경은 전체를 재건하되, 자신의 무덤이 될 곳을 마련해 두라고 지시했다. 나중에 추기경은 소르본 대학교 부속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 후 지라르동이 만들어 건물에 장식한 걸작품은 혁명기에도 세심하게 보존되었고, 루이 18세가 왕좌에 앉으면서 1816년 성당을 재건축했으며, 19세기 말까지도 꾸준히 재건과 확장이 이루어졌다. 소르본 대학은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르네상스 학자이자 풍자작가인 라블레가 ‘소르보나그레’라는 벌레가 사상가들의 지성을 먹어치운다는 풍자를 쓰면서부터였다.

댓글 남기기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