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 베르탱

ACU_Rose_Bertin1747년 7월 2일생인 로즈 베르탱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패션 장관‘으로 유명했다. ─패션 장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바로 이런 거야.─

그녀는 22세의 나이로 당시 패션의 중심지였던 생오노레에 최초의 부띠끄 르 그랑 몽골리앙을 열었다. ─내가 프랑스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는 건 아니지만, 이 부띠끄 이름 혹시 ‘거대한 몽고인’이란 뜻 아냐? 내가 로즈 베르탱의 패션 장관이었다면 이름 바꾸라고 조언했을 것 같아. 그 몽고인이 누군지, 얼마나 덩치가 큰지는  상관 없지. 덩치가 크든 작든 그건 문제가 아냐. 누가 거대한 몽고인이란 이름의 부띠끄에서 옷을 사겠냐고?─

베르탱은 보닛, 짧은 망토, 여성용 외투, 주름잡힌 베일 등도 만들기 시작했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 세련미에 매혹되어 로즈 베르탱의 조언에 맞춰 의상을 입었다. 베르사유의 드레스 코드는 곧 로즈 베르탱의 취향으로 바뀌었다. 드레스 자락이 좀 더 간결해져서 여성들이 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특히 치마를 부풀리기 위해 입는 단단한 속치마인 파니에를 배척하여 거추장스러움이 한결 덜해졌다. ─했던 얘기 또 해서 미안한데, 아무튼 의상 부띠끄 이름을 ‘거대한 몽고인’으로 지으면 안된다니까.─

베르사유 궁전에서 얻은 로즈 베르탱의 명성은 곧 코블렌츠1)오늘날의 독일, 브뤼셀, 런던,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퍼져나가 다양한 국적의 고객을 확보하게 되었다. 로즈 베르탱이 혁명의 혼돈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국제적인 고객층 덕분이었다. 공포 정치 기간동안 그녀는 프랑스를 떠났고, 1800년이 되어서야 귀국했다.

각주   [ + ]

1. 오늘날의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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