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오언

출생 1804년 7월 20일

ACS_DB_Richard_Owen리처드 오언 경은 학교에서 자연사를 배운 적이 없다. 이는 그의 인생에서 첫번째 실수라 할 수 있다. 그는 에든버러 의대를 졸업하고 헌터리언 박물관에서 동식물 표본 제작 일을 하다가 1830년에 런던 동물원의 최연소 연구원이 되어 활발하게 연구에 매진했다.

19세기 중반에 과학자들은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신의 존재에 대한 가설을 제시하고 있었다. 오언도 지구상의 종의 기원에 대한 가설을 요약한 논문을 출간하여 학계에 진출하게 되었다. 실제로 오언은 동물에게서 관찰되는 변화는 환경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믿었으며, 모든 종은 전형적인 공통의 조상을 공유할 뿐 아니라 이상적인 형식으로 진화하고 있고 인류는 그 정점에 이미 도달했다고 보고 있었다.

─유인원에서 생태계의 정점으로. 내 자서전 제목으로 좋을 것 같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상관 없다. 오언 시대의 사람들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랐다.─

오언은 비평에 과잉반응을 보이고 화를 내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과학계에서 지켜야할 적절한 행동과 표현의 선을 넘고 말았다. 1858년에 찰스 다윈이 출간한 <종의 기원>에 대한 그의 가차없는 비평에서도 이를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다. 오언은 동시대 과학자들이 다윈과 자연 선택론을 옹호했음에도 자신만의 이론을 굽히지 않았다. 생물학 분야에서 동료들에게 외면을 받았다고 느낀 오언은 자연사 박물관을 세우는데 집중하여 1881년 마침내 박물관을 개장하게 된다. 그리고 3년 후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그 직후에 은퇴한다. ─나도 기사 작위를 받자마자 은퇴하고 싶다.─

오언은 1892년 사망한 후 다윈의 이론에 반대한 것과 비뚤어진 자기중심적 인물로만 기억되었다. 하지만 그가 ‘공룡‘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든 사람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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