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왕국 시대의 피라미드

피라미드의 부활

중왕국 시대동안 제12왕조의 강력한 지배자가 정교한 피라미드 무덤 건설의 전통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아메넴헤트 1세는 리슈트에 장례단지를 건설했으며, 세누스레트 2세는 파이윰의 일라호운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아메넴헤트 2세와 세소스트리스 3세는 다슈르를 선호했습니다. 아메넴헤트 3세는 파이윰의 하와라로 이동하기 전에 그곳에 피라미드를 건설하기도 했습니다.


더 작고 정교하게

정세가 불안정해지고 무덤이 도굴 당하자 중왕국의 건축가들은 피라미드에 점점 복잡한 보안 수단을 고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하와라의 건축 계획은 다슈르보다 단순했지만, 도굴꾼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은 훨씬 정교해졌습니다.

통로를 복잡하게 만들고 은밀한 함정에 더해 건축가들은 건설이 끝난 후 미끄러져 내려오는 석판 시스템을 고안했습니다. 이 거대한 석판은 묘실로 이어지는 통로를 영구적으로 봉인하는 수단이었습니다.


피라미드의 쇠퇴

제13왕조의 왕들은 다슈르 남쪽의 마즈구나에 피라미드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이후 파이윰과 아비도스로 이동했습니다.

하지만, 제17왕조의 왕들은 동굴 무덤에 생벽돌로 지은 작은 피라미드를 얹는 정도로 만족했습니다.

제18왕조의 왕들은 피라미드형 무덤을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그들은 왕가의 계곡에서 피라미드 모양의 산을 골라 무덤을 팠습니다.


유산

이러한 상황은 제25왕조의 누비아인 파라오가 다시 피라미드 무덤에 묻히기까지 지속됐습니다. 고대 누비아 지역, 오늘날 사실상 수단 지역에는 알려진 피라미드가 220개이며 이집트에는 138개가 있습니다.

건축 기술도 쇠퇴하고 인기도 서서히 줄었지만, 피라미드는 로마시대까지 모두에게 매력적인 건축물이었습니다.

이러한 피라미드는 오늘날까지 남아 파라오의 종교적 헌신과 고대 이집트의 영화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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