뤽상부르 공원 및 궁전

Palais et Jardin du Luxembourg1612년, 프랑스 앙리 4세의 미망인이었던 마리 드 메디치─그렇다. 그 ‘메디치’ 일가 사람이란 말씀. 하지만 에지오가 살았던 시대로부터 수백년이 지난 후의 메디치 가 사람이지…─는 뤽상부르 공작으로부터 부지를 사들여 프랑스 건축가 살로몽 드 부로스에게 설계를 맡겨 아름다운 궁전을 건립한다. 그녀는 궁전을 메디치 궁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어했으나 그녀를 증오했던 파리지앵들은 그 곳을 계속해서 ‘뤽상부르’라고 불렀다.

1750년, 뤽상부르는 파리 최초의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고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왕실 수집품인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1793년, 뤽상부르 궁전은 잠시 ‘국립 교도소’가 되었었다. 당통도 단두대에 보내지기 전 이 곳에 갇혀 있었다. 당통 그 자신이 적들을 그 곳에 쳐넣었던 것처럼.─아주 잘 들 하는 짓들이셔. 물론 앱스테르고 소속 사학자가 암살단에게 동조하는 목소리를 낼 리 없단 것 쯤은 잘 알고 있겠지? 당통은 사실 그런 일을 당해도 싼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

1801년, 보나파르트는 이 건물을 프랑스 상원의회에 헌납하였으며 오늘날까지 상원의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그 후 1836년에 이르러 궁전은 건축가 알퐁스 드 기소에 의해 대대적으로 재건축되었고 이는 마리 드 메디치라 할지라도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원래 모습과는 다르게 궁전을 변신시켰다. 그러나 그 정원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파리지앵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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