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포이의 신탁

신성한 길

아폴로 신전으로 여정을 떠난 순례자들은 신성한 길을 따라 파르나소스 산을 올라갔습니다. 여름 햇살이 순례자들의 등에 따갑게 내리쬐었죠.

길을 따라가며, 사람들은 길을 장식하고 있는 장엄한 기념물, 보물, 그리고 조각상을 구경했습니다.

이런 주요 지형물들은 예언자의 자비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세운 것이었습니다. 모든 물품들은 아폴론에게 헌정되었으며, 대부분은 군사적 승리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도시들이 바친 것이었죠.

기념물들은 기증자의 신심뿐만 아니라 힘과 부를 과시하는 용도이기도 했습니다.

델포이의 신성은 지금까지도 남아있으며, 관광객들 또한 여전히 순례자들과 같은 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델포이에 대한 자료 중 상당 부분을 제공해준 곳은 1860년 이래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프랑스 국립 아테네 연구원입니다. 이 연구원의 성과로 델포이와 이 장소의 시간적 흐름에 따른 발달 과정에 대해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었죠.

연구 초기 단계에서 맞닥뜨려야 했던 난관 중 하나는 이 상징적인 장소가 수m의 퇴적층 아래에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퇴적층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던 카스트리 마을이 있었죠.

연구원에서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1천명의 마을 주민들 전원이 이주를 마쳤습니다. 빈 마을에는 발굴 작업의 부산물을 치우기 위한 철로가 건설되었고, 연구자들은 이 신성한 장소를 다시 탐사할 수 잇었습니다.


크니도스인들의 봉헌물

아폴론에게 바친 공물 중 가장 인상적인 물품은 시칠리아 북부의 리파리 섬을 식민지로 삼았던 크니도스인들이 헌납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관해 숨겨진 이야기는 언급할 필요가 있겠군요.

크니도스인들은 티레니아 해 인근의 에트루리아인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좋은 징조가 있기를 바라며, 크니도스인들은 신탁을 요청했고, 예언자의 조언에 따라 성공적으로 적 선박을 20척이나 나포할 수 있었습니다.

아폴론께 감사드리는 의미로, 크니도스인들은 자신들이 나포한 선박 수만큼의 조각상을 신께 바쳤습니다.

오늘날, 일부만이 남겨진 이 기념물에 대해 현존하는 기록 중 가장 정확한 기록은 고대의 기록자 파우사니아스가 남긴 것입니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크니도스인과 리파리인들 역시 ‘그리스적’인 가치가 소위 ‘야만’에게 승리했음을 상징하는 헌정품을 남기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아테네 주랑 현관

낙소스의 스핑크스 옆으로, 수수한 건축물 안에 아테네인들이 바친 제물들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전리품으로 얻은 것이었죠.

특히나 ‘봉납품’이라 부르는 이 제물들은 침몰한 페르시아 선박들의 이물이었습니다.

아테네인들은 기원전 478년, 페르시아와의 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후에 이 주랑 현관을 건설했습니다.

아테네 주랑 현관은 페르시아 전쟁 말엽, 승리를 기리기 위해 건설되었습니다.

이 주랑 현관은 당시 아테네의 기세를 보여주는 징표라 할 수 있습니다. 아테네는 나머지 그리스 지역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여 스파르타를 포함한 여러 도시를 불쾌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스파르타와 아테네 간의 알력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알려진 전면전으로 발전했습니다.


제물과 희생의식

일단 델포이 신전에 도착하면, 신탁을 받기를 원하는 순례자들은 세금을 바쳐야 했습니다

이 세금을 바쳐야만 1차적으로 아폴론의 제단에서 동물을 제물로 바칠 권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티아 무녀 앞에 서기 위해서는 예비 제의에 성공해야만 했습니다.

동물이 순조롭게 반응하고 신에게 받아들여질 징조를 드러낸 다음에야 비로소 희생 되었으며, 순례자는 신전에 들어가 피티아 무녀에게 질문하도록 허가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폴론의 제단은 거대한 대리석 단상이었습니다. 희생의식을 치르기 전, 단상 위에 불을 지폈죠.

그 다음으로는 희생용 제물을 망치로 기절 시켰는데, 제물로는 대개 황소를 마련했습니다. 동물의 가죽은 신관에게 줬던 반면, 고기는 두 부분으로 나눴습니다. 뼈와 지방은 신께 바쳤고, 살코기는 동물을 구매한 사람들이 구워먹을 수 있도록 분배했죠.


아폴론 신전

예언자가 신탁을 줬던 아폴론 신전은 피티아 무녀를 만나려는 이들의 종착지였으며, 외관 또한 그 장엄한 목적에 걸맞았죠.

위엄 있는 열주 위에 얹힌 건물의 박공에는 잘 알려진 신화의 장면들이 유명한 그리스인 예술가 안테노르의 솜씨로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신전의 장엄한 외관도,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에 비하자면 빛이 바랠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본디 기원전 7세기에 건설되었던 아폴론 신전은 기원전 548년에 불타고 말았으나, 아테네 귀족 가문의 후원을 받아 기원전 6세기 말엽에 재건되었습니다.

기원전 4세기 경에는 지진으로 인해 다시 무너지는 바람에 건축가 스핀타로스의 도움을 받아 재건해야 했죠. 그 후로는 기원후 390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에 의해 파괴될 때까지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피티아1)무녀의 신탁

예언은 신전의 가장 내밀한 장소인 아디톤에서 순결한 처녀였던 피티아가 내렸습니다.

예언을 시작하기 전이면, 무녀는 물로 자신의 몸을 정화하고, 월계수 잎과 보리가루를 태워 의식을 시작했죠.

그리고 제물로 둘러싸인 삼각대에 앉은 무녀가 아폴론의 전언을 전했습니다.

무녀의 말은 대개 이상하거나 알아듣지 못할 경우가 많아, 신관들의 해석이 필요했습니다.

수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예언을 내릴때 예언자가 보였던 행동의 정확한 원인은 오늘날까지도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피티아의 에언은 평범한 인간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기에 신관들의 해석이 필요했습니다.

헤로도토스는 부유하기로 유명했던 크로이소스 왕이 신녀의 예언을 잘못 해석했던 일화에 대해 전합니다.

선전포고를 앞둔 왕은 전쟁의 결과에 대해 물었고, 예언자는 하나의 왕국이 무너지리라고 예견했습니다.

크로이소스에게는 불행하게도 무너진 것은 그의 왕국이었고, 페르시아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신탁의 기원

신화에 따르면, 파르나소스 산에 성소를 마련한 것은 신들의 말을 인간들에게 전할 무녀를 찾던 아폴론이었다고 합니다.

아폴론은 뱀처럼 생긴 이 지역의 흉악한 수호자, 피톤을 죽이고 이 장소를 차지했죠.

피톤과의 싸움은 그리스인들에게 신탁과 성소의 기원에 대해 설명해줬습니다.

이 싸움은 티폰과 싸워 승리를 거뒀던 제우스나 여러 괴물들을 물리쳤던 헤라클레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혼돈의 힘에 대한 문명의 승리를 상징했습니다.

각주   [ + ]

1. 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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