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보나파르트

acu_napoleon_bonaparte몇주만 일찍 태어났더라면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그가 코르시카 섬에서 태어났을 때의 이름은 이탈리아식인 ‘부오나파르테’ 였다. 코르시카 섬은 제노바 공화국의 속령이었다가 나폴레옹이 태어나기 얼마 전인 1786녀 프랑스에 팔렸다. 비쩍 마른 소년이었던 나폴레옹은 힘든 사춘기를 보냈다. 옷차림은 남루했고 심한 코르시카 억양을 쓰는 데다 시골 사람의 투박한 행동은 같은 사관학교의 말쑥하고 세련된 젊은 귀족 자제들과는 너무나 달랐다. 장차 황제가 될 몸이었지만 당시에는 ‘매력 없는 자코뱅당’ 이었던 나폴레옹은 자주 휴가를 떠나는 불량 근무자였다. 프랑스군에 복무하는 동안 근무일은 33개월이었으나 휴가를 떠난 기간은 무려 38개월이나 되었다. ─진짜 이탈리아스러운데.─

1791년, 나폴레옹은 코르시카에 몇달을 머물면서 코르시카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파스콸레 파올리를 도왔다. 나중에 파올리는 ‘부오나파르테’ 가문을 증오하고 불신하게 된다. 나폴레옹은 휴가일수가 너무 많아지는 바람에 1792년 1월 1일 프랑스 군에서 쫓겨났지만, 얼마 안 가 코르시카 의용군의 대령으로 임명되었다. 이 부대는 성직자 공민헌장에 반대하는 시위자들에게 발포를 하기도 했고, 나폴레옹은 명령을 받지도 않은 채 아작시오의 요새를 점령했다. ─자율적 판단으로 행동하는 군인이라… 그건 군인 자격이 없는 거지.─

나폴레옹은 1792년 6월 20일과 8월 10일의 혁명에도 가담했다. 툴롱 해방 작전에 성공하고1)─나폴레옹 혼자의 공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포병대 사령관으로서 보여준 놀라운 능력 때문에 그는 젊은 혁명 지도자 막시밀리앵 로베스피에르의 동생 오귀스탱의 존경을 받게 되고, 막시밀리앵 로베스피에르는 나폴레옹을 육군 준장으로 임명하고 프랑스의 이탈리아 점령군 포병대의 지휘 임무를 맡겼다.

왕당파가 혁명 전부를 전복 시키려 했던 방데미에르 13일의 반란을 진압한 후, 폴 바라스2)나중에 나폴레옹과 결혼하는 조제핀은 바라스의 정부였다.의 명령을 받은 나폴레옹은 이번에는 이탈리아 원정군 총사령관으로서 이탈리아 점령에 나섰다. 이후 4년은 나폴레옹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승리를 잘 활용했으며, 대중의 여론을 등에 업고 자신의 약점을 감춰버리는 데 능했다. 프랑스 국민이라면 그가 이겼던 피라미드 전투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가 넬슨에게 패했던 아부키르 만의 전투를 아는 프랑스인은 거의 없었다. 불과 서른의 나이에 프랑스 통령이 된 나폴레옹이 추구한 것은 귀족 계급이 되는 것도, 혁명가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모친이 언젠가 질책을 하자, 나폴레옹이 “나는 황제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799년 그는 “나는 보나파르트다.”라고 선언했다. 이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만인지상의 지위에 올랐고, 코르시카 억양도 거의 없어져 버렸다.

각주   [ + ]

1.─나폴레옹 혼자의 공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2.나중에 나폴레옹과 결혼하는 조제핀은 바라스의 정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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