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시밀리앵 프랑수아 이지도르 드 로베스피에르

ACU_Robespierre_Render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난산으로 사망하고 아버지마저 집을 나가버리자, 로베스피에르는 오라토리오회의 영향력 아래에서 성장했다. 어린 로베스피에르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으로 특히 로마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성인이 된 후 그의 연설문 곳곳에서 로마에 대한 집착을 찾아볼 수 있다. 법조인 교육을 받고 고향 아라스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로베스피에르는 우울증 증세를 보였고 이대로 지방의 평범한 인물로 살아갈 것처럼 보였다. 삼부회 아르투아의 제3신분 대표로 8명중 다섯번째로 선출된 것은 1789년 4월 20일, 그의 나이 31살이 되어서였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는 곧 파리를 점령했고, 죽기 전까지 아라스는 딱 한번 방문했다. 파리의 혁명가로 5년을 활동하며 로베스피에르는 다양한 청중들을 대상으로 여러차례 연설을 했다. “모든 국가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우주의 존재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니까 가능한 말이지. 내가 이런 연설을 했다가는 청중들한테 맞아죽을걸.─

목소리가 거칠고 아르투아 억양 때문에 좋은 웅변가는 아니었지만, 로베스피에르는 점점 더 많은 관심을 얻었다.

로베스피에르의 사생활은 알려진 바가 극히 적다. 품격 있는 삶을 살았으나 자신에게 상당히 엄격했고, 여가시간 대부분은 공부와 좋은 교우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 바쳤다. 로베스피에르는 남을 불신하는 경향이 강했기에 모사꾼과 이것저것 탄원하려는 자들에게는 냉혹하게 비쳤다. 실제로 그는 대중의 인기를 끌려는 노력을 일체 하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오히려 찬탄을 받았다.

최고 권력을 장악한 후에는 온건한 이미지에서 급속히 벗어나 극단주의 성향을 보였으며 공포정치를 단행했다. 최고 존재 축제와 공포정치로 절정에 달했던 로베스피에르의 권력은 공안위원회의 지지를 잃으면서 몰락했다. 한때 동지였던 자들이 등을 돌렸고, 로베스피에르는 체포되어 단두대에 올랐다. ─대중이 요청하는 바람에 이듬해에 열릴 예정이었던 제2회 축제의 입장권이 미리 발매되서 다 팔렸었다는 얘기를 덧붙여야겠네. 물론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면서 이 축제는 다시 열리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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