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투소

스트라스부르에서 마리 그로숄츠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마리 투소는 런던에 설립한 밀랍인형 박물관으로 유명하다

─이름을 바꿨으니 망정이지, 알아보기 힘든 마담 그로숄츠의 밀랍인형 박물관이었으면 장사 해먹었냐.─

그녀는 필리프 쿠티우스 박사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면서 밀랍인형을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필리프 쿠티우스는 의사이자 물리학자, 또한 해부학자로서 강의시간에 사용할 머리통과 장기 등을 직접 만들었다.

─해부학 수업을 말하는 거겠지. 만약 그가 수학시간에 그런걸 가져온 거였다면 당국에서 저지했어야하니까.─

마리는 박사의 가장 총명한 (그리고 유일한) 밀랍인형 제조 제자가 되었고, 박사와 함께 파리로 갔다. 1776년 이들의 전시회에는 많은 군중이 몰렸으며, 사람들은 밀랍인형이 진짜 사람처럼 정교한 것에 놀랐다. 인형의 피부가 살짝 전율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1778년 마리가 처음으로 만든 밀랍인형은 서로 철천지 원수였던 볼테르와 루소의 인형이었고, 그 후에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인형을 만들었다. 그녀는 또한 루이 16세에게 고용되어 왕의 누이들에게 그림과 모형 제작을 가르쳤고, 아예 베르사유로 이사했다. 하지만 이렇게 왕족과 가까이 지냈던 탓에 왕정이 무너지자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그녀는 왕당파 지지 혐의로 체포되어 외젠 드 보아르네와 같은 감방에서 사형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사형집행인이 목을 단번에 자를 수 있도록 그녀의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는 순간, 마리를 풀어주라는 명령이 도착했다. 단, 조건이 있었다. 앞으로 미움을 받든 사랑을 받든, 단두대에서 처형당하는 유명인물들의 머리를 밀랍으로 본을 떠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마리 앙투아네트, 마라, 로베스 피에르의 머리도 그녀의 손을 거쳤다. 스승인 쿠티우스는 공포정치가 내리막길을 걷던 1794년 가을에 사망했고, 그는 자신의 머리통 수집품을 마리에게 물려주었다.

─자상하셔라.─

마리는 1802년 런던으로 가서 20년 전부터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밀랍인형들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후 죽을때까지 런던에 살면서 계속 밀랍인형를 만들었고, 54년을 밀랍인형 제조에 바친 끝에 향년 88세로 사망했다. 자신의 밀랍인형은 오래 전에 만들어 두었기에, 박물관에 있는 그녀의 밀랍인형은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

─’영원한 젊음’이 ‘영원한 죽음’을 뜻하나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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