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ACU_Marie_Antoinette_Render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는 아마 프랑스 왕정 사상 가장 미움받는 여성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름답지만 경솔하고 남을 곧잘 조롱하는” 여자라는 평가는 따분한 결혼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파티와 사치에 탐닉한 것에서 비롯되었고, 그녀의 모친인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딸을 가리켜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방향으로 질주한다”는 말로 그녀의 미래를 본의 아니게 예언하기도 했지만, 사실 프랑스의 재정을 위기로 몰아넣은 원인은 왕비의 경망스러운 사치가 아니라 미국 독립전쟁이었다. ─그렇지. 사실 파티만으로 프랑스 재정을 파탄시키려면 하루 24시간 내내 파티를 해도 될까말까일 걸. 그걸 다 장부에 기록하려면 정말 어마어마했겠어…─

1789년 봄, 마리 앙투아네트는 남편인 국왕이 상호 모순되는 정책을 밀고 나가도록 독려했다. 외국의 개입만이 프랑스 왕위를 지킬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왕정의 종말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라파예트와 미라보의 도움 제의를 거절하고, 왕가가 모두 해외로 도피한다는 과감한 계획을 추진했지만 결국 바렌느에서 발각되어 잡히고 말았다. 1792년 8월 13일, 튈르리 궁 습격이 있은 후 마리 앙투아네트와 그 가족은 탕플 탑에 감금 되었으며, 1793년 8월 1일에는 미망인이 된 몸으로 콩시에르주리 감옥에 수감되었다. 10월 14일에는 혁명 재판에 회부되었고, 10월 15일에는 “반역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사형은 선고를 받은 다음날 집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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