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묘지

파리의 좌안은 석회암 광산 위에 지어졌다. 석회암은 파리라는 도시의 상당 부분을 짓는데 사용되기도 했다. 원래 파리 근교에는 석회암 광산이 많았고, 도시가 팽창하면서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광산 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중세의 석회암 광산은 석회암이 매장된 깊이까지 수직으로 판 다음 석회암 매장층을 따라 수평으로 파들어가는 형태였으므로, 파리의 거리 밑은 이렇게 만들어진 터널들이 온통 미로를 이루고 있었다. 1774년부터 건물들이 잇따라 붕괴하면서 이 터널들을 더이상 모른척 할 수 없게 되었고, 1782년 경찰서장 크롱이 대책마련에 나섰다.

─흠… 아주 신속하네.─

크롱은 240헥타르 내의 광산을 조사하여 등록하는 작업을 개시했고, 이 오래된 수갱들이 파리의 또 다른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될 수도 있음을 파악했다. 그 문제란 ‘결백한 자들의 묘지’에서 나온 수십만 구의 뼈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것이었다. 묘지에 시신이 얼마나 촘촘하게 매장되었는지, 인접한 건물들의 지하실로 뼈들이 그야말로 ‘쏟아져나오는‘ 수준이었다.

─공포 체험지로 딱이네.─

크롱의 노력으로 6백만 구의 인골이 버려진 광산에 묻혔다. 그 높이는 30m에 달했다. 그 중에는 1792년 9월 학살로 사망한 크롱 자신과, 1800명의 희생자도 있었다. 나중에 건축가들이 이 지하동굴들을 묘지라고 부를만한 형태로 개선시켰다. 나중에 시인 자크 들릴이 “멈추시오! 여기 죽음의 제국이 있소”라는 비문을 남겼다. 이 지하묘지의 인골들은 아주 복잡한 패턴으로 배열되었으며, 마치 박물관처럼 방을 만들어 파리 지하에서 발굴한 각종 다양한 돌과 기이한 형태의 해골을 전시해 놓았다. 이런 기이한 미학적 취향 덕분에 1800년대 초기부터 이 지하묘지들은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되었다.

─그러게. 돌+아이들이 참 좋아하겠어.─

댓글 남기기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