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6세

ACU_Louis_XVI_Render본명은 루이 오귀스트. 루이 15세의 손자이자 황태자인 아버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왕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나, 두 형이 사망한 이후 1765년 부친마저 사망하자 왕세손에 봉해졌다. 1774년 루이 15세가 사망하면서 20세의 나이에 왕위를 물려받게 되었다.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와의 사이에서 7년동안 왕위 계승자를 낳지못해 프랑스 국민들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심지어 두사람의 결혼식도 비극으로 끝났다. 결혼식후 벌어진 불꽃놀이 축제를 구경하러 몰려든 파리 시민이 백여명이나 사망했던 것이다.

루이 16세는 우유부단한 인물로, 어느 관리는 그를 이렇게 묘사했다. “국왕은 매일 저녁마다, 그날 아침에 잘못을 했다는 말을 하며 평생을 보냈다.” 그의 남동생(후일 샤를 10세)은 약간의 빈정거림을 섞어 말하곤 했다. “루이 형에게 한가지 생각을 끝까지 고수하게 만드는 것은, 기름칠을 한 당구공을 한자리에 가만히 놔두려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왜 이렇게 끝내주는 표현이 유명해지지 않은거지? 어떤 표현이 유명해지는 건, 망치에 기름을 바른다음 고양이가 그 망치와 결혼하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어려우니까.

그런 표현은 혼자만 알고 있어.─

루이 16세의 재위 기간 19년동안 프랑스는 점점 더 혼돈에 빠졌다. 프랑스 왕정은 개혁을 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조부 루이 15세는 나라에 산재한 문제를 덮기에 급급했을 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루이 16세는 조부의 지나친 방임주의와 방탕한 생활과는 대조적인 삶으로 ‘단호한 루이’로 불리기를 바랐겠지만, 프랑스 여론에 비친 그의 모습은 ‘허약한 루이’라는 별명이 적합할 것이다.

─뭐 ‘단호한 루이’는 진짜 안어울리지만 그래도 그 많은 루이 중에서는 제일 유명하잖아? 그거라도 위로가 되려나.─

그나마 본인이 결정을 내렸던 것들이 결국 자기 목숨을 내놓게 만들고 말았다. 영국과의 전쟁에서 미국을 편들며 벤자민 프랭클린과 조지 워싱턴을 지원했던 것이 프랑스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고, 1789년에는 실질적으로 파산 상태가 되어버렸다. 더구나 영국과의 통상조약으로 재정은 더욱 악화되었다. 기술면에서 프랑스에 훨씬 앞서있던 영국은 우수한 산업 생산품을 프랑스에 대량으로 수출할 수 있었고, 아직 수공업 수준이었던 프랑스 산업은 붕괴 상태에 이르렀다. 영국의 수출품 일부는 혁명 세력이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 프랑스의 식량 부족은 흉작과 날씨 탓이었겠지만, 굶주린 민중은 귀족과 부유층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파리를 떠나 베르사유에서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을 누리던 귀족들도 결국 왕정이 무너지는 또다른 이유가 되었다. 한편 성직자들 중에서 민중의 비참한 생활을 어느정도 같이 하던 낮은 신분의 성직자들은 혁명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하지만 국왕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고, 귀족들은 자신들이 희생자가 되는 혁명을 자초했다.

1791년 여름, 혁명의 불길이 점점 번져나가자, 루이 16세는 프랑스를 몰래 빠져나가 외국의 왕당파 군대에 의지한다는 위험천만한 계획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파리를 빠져나와 도망가던 왕족들은 바렌느에서 발각되었고, 이 사건으로 절대왕정은 그 종지부를 찍게 된다. 1792년 8월 10일, 민중은 튈르리 궁전을 습격했고 루이 16세는 국민 의회에 몸을 의탁했지만 역사의 물결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는 권력을 모두 잃고 체포당하는 신세가 되었으며, 파리에 있는 중세 요새인 탕플(Temple) 탑에 유폐되었다.

루이 16세에 대한 재판은 그리 길지 않았고, 사실상 보여주기에 불과했다. 국왕에게 유리한 증언을 한 증인들은 그 후 두번의 사태에서 목숨을 잃었고, 국왕의 기소된 죄에 대해 무고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문건들은 국왕을 옹호하는 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즉, 재판이라기보다는 재판의 흉내에 지나지 않았다. 판사들은 처음부터 정해져있는 판결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절대’ 군주 루이 16세는 자기가 살던 궁내조차 제대로 통치해본 적이 없었고, 통치 기간 내내 자신을 둘러싼 인의 장벽에 휘둘렸다. “짐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는 1789년 프랑스의 혁명파 저술가인 리바롤에게 그렇게 물었고, “국왕답게 행동하시오!”라는 답을 들었다. 정말로 그렇게 행동했다면 어땠을까. 지리학과 위대한 탐험에 관심이 많았고 자물쇠 만들기와 목공이 취미였던 루이 오귀스트. 그는 왕이라는 직업이 맞지 않았을 뿐이었다.

─내 경험인데, 취미가 자물쇠 만들기라는 사람은 절대 믿으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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