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건 경

출생1797년 10월 16일

ACS_DB_Lord_Cardigan7번째 카디건 백작이었던 제임스 토마스 브루드넬은 19세기 전반의 영국 귀족 사회에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이뤄내고 마는 거만하고 난폭한 성격이자, 큰 총을 가지고 살아있는 병사─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작농들‘─를 겨누며 장난을 치기를 좋아하는 자였다.

제임스가 14살이었을때 아버지가 카디건 백작 작위를 상속받았으므로 그는 버킹엄셔에서 부유하게 자라났다. 영국 최고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학위는 받지 못했다. 그가 템플기사단에 가입한 기록은 찾을 수가 없다. ─이렇게 부자이고 연줄이 많으면 기록따위를 없애는 건 일도 아니었겠지.─

1818년에 제임스는 말보로 의회에 입성했다. 말보로는 윌트셔의 작은 마을로, 담배 광고에 나오는 카우보이는 없다. ─말보로에 갈 일이 있으면 맛있는 술이나 마셔보길 바란다.─ 어쨌든 사촌이 말보로 구역을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제임스는 쉽게 의회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의원이 되기 전에 유럽 여행을 하기로 했다는데, ‘통치’라든가 ‘책임감’보다는 역시 ‘외국 여자들과 시시덕거리기‘가 더 재밌었을테니까.─ 마침내 의회에 입성한 후도 눈에 띄는 업적은 없었으며 인기도 없었다. 1832년의 선거에서 2만 파운드(현재 가치로 166만 파운드)를 뿌렸음에도 선거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동네 선거에 출마하면서 “개혁은 억지”라든가 “선조의 고귀한 정신 수호” 따위를 슬로건으로 사용하면 질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정치 분야에서 실패를 맛본 로버트는 군대로 관심을 돌렸다. 어린 시절에 워털루의 웰링턴 기병부대를 동경했던 기억을 되살려,─예쁜 말을 좋아했다보다.─ ‘노샘프턴셔의 개혁주의자 세력 확대를 방어’하기위해 개인 기병부대를 만들었던 것이다. ─거짓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별 성과가 없자 몇년간 경기병으로 복무하며 중위에서 중장, 그리고 11대 경기병 대장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행위’를 이유로 군법 회의에 회부되어 윌리엄 왕에 의해 강제 퇴역하게 되었으며, 불법 결투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가족의 연줄로 인해 무혐의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영국군 지휘관 역할로 인도로 파견되어 1년동안 복무한 후, 호랑이 사냥 등등을 하며 돌아다니다가 오랫동안 인도에 주둔해있던 11대 경기병의 영국 귀환에 딱 맞춰 돌아왔다. 1837년에 백작 작위를 상속한 돈 많은 카디건 경은 개인 요트를 타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멍청한 놈만 아니었더라도 좋아했을텐데.─

이처럼 오랫동안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지만, 카디건 백작은 발라클라바 전투에서 경기병대의 돌격을 지휘했던 것으로 가장 유명하다. 처음에는 전투에서 자기만 살짝 빠졌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실제로 돌격을 전방에서 지휘했던 것으로 보이며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간에 누구도 자신을 해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에서 우러나온 용기를 가지고 있었음은 분명했다. 하지만 부대원들이 죽든 말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전투에서 패배하자 다시 개인 요트를 타고 샴페인을 마시면서 우아한 인생을 살았으니 용맹심에 사로잡혀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전쟁이 끝나자 카디건은 영국으로 돌아와 개혁 반대 운동에 참여하고 크림 전쟁의 영웅으로 자신을 알리는데 여생을 보낸다. 어쨌든 퇴역군인을 위한 자선 행사에 많은 돈을 기부했으며 말년에는 1867년의 선거법 개정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정된 선거법은 상류층이 하원을 장악하도록 만드는데 주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사상이 변했다기보다는 템플기사단의 책략에 가까웠던 것 같다.

─어쨌든 그의 이름을 딴 카디건 스웨터는 전세계 연예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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