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루

Cap 2015-12-21 17-46-22-637보병대 중위의 아들이었던 그는 1779년 신부가 되어 생트 교구의 하급 성직자로 일했다. 하지만 봉건제 반대 운동에 참여한 농부들이 자신의 교구를 없애버리려는 움직임을 독려했고, 그 바람에 교구에서 쫓겨나게 되자 이 ‘붉은 사제’는 파리로 피신했다. ─별로 멋있는 별명은 아닌데? ‘블랙 위도우’ 정도는 돼줘야 폼나지. 당시에는 충격적이었는지 몰라도, 요즘은 이 정도로 별난 성직자야 그리 드물지 않으니까.─

루는 곧 ‘작은 마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통, 마라 등이 속한 정치모임인 코르들리에 클럽에서 그의 설교는 점점 더 선동의 강세를 높였다. 1793년 2월 25일, 루는 파리의 상점 습격과 약탈을 부추겼다. 그의 행동은 오로지 ‘생계’라는 문제에 집중되어 있었다. 사회에서 유일하게 유용한 계급인 노동계급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유일한 관심거리였다. ─지금까지는 지극히 정상이잖아… 이래서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니까.─ 루는 노동자들을 이용하는 투기꾼, 고리대금업자, 고용주들을 처벌할 것을 청원했다.

1793년 6월 25일, 루는 국민 공회에서 자신의 ‘미치광이 선언문’을 선포했고, 야유를 받았다. 6월 28일에는 로베스피에르─그러니까 이 사람은 ‘로베스피에르도 감당 못할 미치광이‘였던 거지. 그래서 아주… 특수한 집단에서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는거고.─에게 맹렬한 비난을 받고 코르들리에 클럽에서 쫓겨났다. 마라 또한 루에게 등을 돌렸고, 자신의 신문 민중의 벗에서 루가 삐뚤어진 애국심을 지닌 범죄자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루가 신문을 입수한지 얼마되지 않아 마라는 암살당했다. 루는 단두대가 사형을 집행하는 속도가 늦다고, ─’단두대가 너무 느리다’니… 이 당시 사람들 중에 이 생각에 찬성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텐데…─ 그리고 사회 문제에 대한 대책이 없다고 혁명 정부를 맹렬히 비난했다.

그는 나중에 생트 펠라지 감옥에 수감되었고, 감방에서도 일기를 계속 썼다. 비세트르 감옥으로 옮겨진 후인 1794년 2월 10일, 루는 칼로 자신을 찔러 자살했다. ─이보라고. 루는 자살을 한거야. 칼로 자기를 찔러서 자살을 했다고. 암살단이 개입한 건 전혀 없어. 그냥 칼로 자살한 사람들 중 한명일 뿐이었어.─ ‘상퀼로트의 설교자’로서, 실현 가능한 정치 체제를 발전시키지는 못했으나 그럼에도 억압받는 자들을 위해 노력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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