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아테네 도시의 가정

그리스의 집

오이코스라고 불렸던 주택은 그리스의 가족과 노예들의 주거지였습니다.

바깥으로 열린 현대의 가정과는 달리, 그리스 가정은 안뜰을 기준으로 안으로 열린 구조였습니다.

안뜰은 집의 중심에 위치하여 건물의 주요 광원 역할을 담당했죠. 또한 신앙 생활을 위한 종교적 제단이 있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건물 자체는 욕실이나 창고, 부엌과 거실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시설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오이코노미아라고 불렸던 가사 전반은 대체로 여인의 몫이었습니다.

오늘날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미‘라는 단어의 어원이죠.

그리스 가정의 일부 공간은 여인들과 여자 노예들을 위해 배정 했는데, 이 공간은 기나이콘티스, 혹은 기나이콘이라고 불렀습니다. 기나이콘은 집안의 남성용 공간이었던 안드론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튼튼한 문으로 가로막았고, 집의 위층에 있는 경우가 많았죠.

남성은 종종 남성용 구역에서 심포지아라는 술 잔치를 열었습니다. 반면 여성은 자신의 공간에서 외모를 가꾸거나, 아이를 돌보거나, 실을 잣고 베를 짜거나 악기를 연주했습니다.


파스타

집의 안뜰과 거주구역을 연결하는 복도는 파스타라고 불렸습니다.

올린토스 시에서 출토된 고고학 사료에 따르면, 그리스 가정에 파스타 구조가 더해진 것은 기원전 5세기 경의 일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리스의 집은 주춧돌 위에 목재와 진흙 벽돌로 지었습니다. 타일을 깔았던 안드론을 제외한 바닥에는 진흙을 발랐고, 지붕에는 기와를 올렸죠.

도시의 집은 대개 서로 나란히 위치 했으며, 길가를 향해 열린 방이나 가게를 두는 경우가 보통이었습니다. 창문은 2층에만 있던 경우가 많았지만, 각 방들은 개방된 안뜰을 통해 공기가 순환될 수 있는 구조로 배치 되었습니다.

숯 화로를 사용해서 난방을 했으며, 화로는 주변 방을 밝히는 용도로도 사용했죠. 한편 가구는 안락의자, 의자, 접이식 의자, 탁자, 담요, 쿠션으로 구성되어 매우 단촐 했습니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항아리, 체, 솥, 물그릇 등 많은 도구와 물건이 집 안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 됩니다.


집안의 생산활동

그리스인들은 일과 사생활을 뒤섞는데에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그랬던만큼 많은 이들이 집에서 일했죠.

대장장이나 조각가, 도공들의 작업장은 대개 그들의 집에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작은 가게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죠.

의사들도 마찬가지로 집에 특별한 공간을 마련하고 환자들을 치료했다고 합니다.

노예들이 실을 잣고, 옷감을 짜며, 직조 전반을 관리하는 등, 여인들의 작업도 집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충분히 부유한 가정에서는 비상시에 팔아 살림에 보탤 수 있도록 여분의 옷감을 생산하기도 했습니다.

아테네인들은 다양한 상업 및 산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일터와 주거공간의 구분이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례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여자의 평화’에는 여관 주인이 자신의 거처에서 포도주를 내오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마찬가지로 데모스테네스에 따르면 코논 장군은 자신의 집에서 모든 일을 처리했다고 합니다.

집에서 간이 학당을 운영했던 아이스키네스의 아버지처럼 교사들도 집에서 학교를 열 수 있었습니다.


안뜰

안뜰은 집안의 연결지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방을 연결하고 환기 통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죠.

때때로 빗물을 저장할 수 있는 우물이나 수조를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안뜰 중앙에는 가정의 수호신으로 여겨졌던 제우스 헤르케이오스1)울타리의 제우스에게 봉헌된 제단이 있었습니다.

안뜰은 여인들에게 바느질과 요리할 공간을 제공했고, 아이들에게는 놀이터가 되어주었습니다.

더 나아가 가정에서 기르는 동물들이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곳이기도 했죠.

고대 도자기에 그려진 가정생활의 모습을 보면, 그리스 아이들에게는 여러 놀거리가 있었습니다. 팽이치기, 시소 타기, 공기놀이 등 온갖 방식으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미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죠.

아이들은 자그마한 조각상, 동물, 바퀴 달린 말, 수레와 인형을 가지고 놀기도 했습니다. 테라코타나 회반죽으로 새나 다른 동물의 모습을 본뜬 모형도 흔한 장난감이었죠.

작은 여자 조각을 비롯한 여러 인형들은 오늘까지도 남아있습니다. 이런 인형의 팔과 다리는 관절로 연결되어 있어 아이들이 다양한 자세를 만들며 갖고 놀 수 있었죠.


욕실

욕실은 집의 뒤편에 있었습니다.

용변의 경우에는 요강을 사용했지만 욕실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그리스인들이 청소와 목욕할때 이용하는 곳이었죠.

대부분의 욕실에는 루테리온2)대야이 있어 거기에 목욕물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거울, 면도날, 스트리길, 그리고 해면도 욕실에서 찾아볼 수 있었죠. 향수나 기름을 채워둔 ‘아리발로이’라는 작은 병들도 있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모발이 생명과 힘의 상징이라고 여겼습니다. 본래 모발의 손실은 고령이나 질병을 의미하였고 털을 깎거나 미는 것은 자유의 상실을 의미했습니다. 고졸기에 머리를 기른 사람들은 귀족 계층에 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의 남성들 사이에선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 곱슬거리게 하거나 짧은 가닥으로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반면 여성들은 그물망, 핀, 머리띠를 사용해 긴 머리를 묶었습니다.

고전기에는 머리를 위로 묶어 타오르는 불길 모양을 연출했던 람파디온 머리모양을 포함해 더 다양한 모양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디와 비슷한 예로 땋은 머리를 왕관처럼 묶고 그리스식으로 쪽진 머리를 높이 올렸던 ‘멜론 모양’ 쪽진 머리도 있었습니다.


부엌

그리스의 가정에 딸린 주방에서는 가족의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연회나 희생의식처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그리스인들이 고기를 먹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대개 빵이나 포리지, 마자라는 보리빵을 주식으로 한 곡물 중심의 식생활을 영위했습니다.

이따금 가금류나 생선, 기타 해산물과 과일, 야채, 염소 젖과 치즈, 올리브 기름을 섭취하기도 했습니다.

음식은 삼각대에 얹거나, 이동식 화덕의 일종이었던 클리바노스에서 조리했습니다.

화로, 막사발과 막자, 불 위에 음식을 얹기 위한 꼬챙이, 식기와 프라이팬 같은 다른 조리도구들도 있었죠.

가족 구성원들은 피토이라는 용기들을 주방에 두고 음식을 저장하기도 했습니다.

히포크라테스에 의하면 다른 사람들이 2끼를 먹을동안, 일부 그리스인들은 하루에 1끼를 먹었다고 합니다. 데이프논이라 불린 주 식사는 저녁에 먹었고, 두번째 식사로 먹기도 했던 아리스톤은 정오시간 즈음에 먹었죠.

데이프논은 곡물로 만든 주식인 시토스, 주 요리인 오프손, 그리고 포도주를 일컫는 포토스의 3가지로 구성되었습니다. 오프손은 대개 고기나 생선이었고 포도주는 말린 과일, 견과류, 빵 같은 디저트와 함께 즐겼습니다.

그리스인들의 식단은 지중해의 3대 주식, 곡물, 포도와 올리브에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다.


심포지움

심포지아는 그리스인들의 주된 사교 활동이었습니다. 남성들만을 위한 술 잔치였죠.

이 잔치는 집안에서도 남자들을 위한 공간이었던 안드론에서 열렸습니다. 집주인과 손님들은 클리나이라는 특별한 안락의자에 몸을 기댔죠.

음식은 안락의자 앞의 낮은 탁자에 놓였습니다. 포도주는 크라테르3)혼합용 그릇에 담겨 방 한가운데에 뒀죠.

심포지움이 열리는 동안, 남성들은 음주와 가무, 철학적 논의를 나누거나, 코타보스 같은 놀이를 즐겼습니다.

음악가들과 무용수들, 심지어는 고급 기녀들이 함께하기도 했죠.

하지만, 아내와 딸들이 참석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심포지아에서 가장 흔했던 파티 놀이는 코타보스였습니다. 코타보스는 거의 다 비운 포도주 잔에 남은 술을 목표물에 뿌려서 맞히는 놀이였습니다. 목표물은 보통 물그릇 안에 떠있거나 균형을 맞춰 세워 둔 테라코타 그릇이었고, 남은 포도주를 부어 용기를 가라앉히거나 쓰러뜨리는 것이 놀이의 목적이었습니다.

심포지아에서 벌였던 또 하나의 대중적인 놀이는 스코리아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스코리아는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돌아가며 불렀던 술자리 노래였죠. 참석자들은 월계수나 도금양의 가지를 돌렸습니다. 가지를 들고 있는 사람이 노래를 부르다 돌연 다른 사람에게 가지를 넘기면 그 사람은 최선을 다해 그 노래를 이어불러야 했습니다.


옥상

피르고스라고 불렀던 위층은 여인들의 공간이었습니다. 여성들은 이곳에서 활동하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도 도시를 관찰할 수 있었죠.

옥상은 아도니아라는 특별한 의례를 위한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각기 아도니스를 기렸던 이 기념일은 오직 여성들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봄이 시작될 즈음이면 여인들은 테라코타 항아리에 흙과 양상추 씨앗을 심고 사다리를 올라가 옥상에 항아리를 두었습니다.

이 항아리는 여성들 각자가 보유한 ‘아도니스의 화원’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아도니아 축제는 여신 아프로디테의 사랑을 받았던 인간, 아도니스의 신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르테미스의 분노를 산 아도니스는 멧돼지에게 살해 당했고 그가 흘린 피에서는 꽃이 폈습니다.

아도니스의 비극적인 죽음을 기리는 행사는 아도니아 축제의 핵심이었습니다. 축제에 참가한 여성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으며, 옥상의 화분에 빠르게 발아하고 시드는 식물을 심어 아도니스를 애도하는 의식을 치렀습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사소하고 낭비적인 것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아도니스의 정원’이라는 어휘를 사용했습니다.

옥상에서 행사가 끝나면 여성들은 장례식 행렬을 위해 거리로 내려왔습니다. 행렬이 끝나면 여성들은 작은 신들의 조각상을 묻은 다음 포도주를 마시고 놀이를 하며 기념하였습니다.

각주   [ + ]

1. 울타리의 제우스
2. 대야
3. 혼합용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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