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피아의 신들

피디아스의 작업장

유명한 조각가 피디아스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 작업한 이후에 지어졌습니다.

기원전 453년, 피디아스는 올림피아에서 금과 상아를 이용해 제우스의 위대한 조각상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피디아스는 5년 후 걸작을 완성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뒀습니다.

이 위대한 조각상은 고대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피디아스의 작업실은 제우스 신전 옆에 있었습니다.

5세기에 교회로 바뀐 덕분에 작업실의 구조는 잘 보존될 수 있었죠.

고고학자들은 주변에서 거푸집과 조각 도구와 같은 여러 고대 물품들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유물은 ‘피디아스의 물건이다!’ 라는 공격적인 문구가 적힌 컵이었습니다.

피디아스는 페리클레스의 측근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불경죄로 고발 당해 아테네에서 추방 당하는 사태를 막아주진 못했죠. 그는 파르테논의 아테나 조각상에 쓰일 금을 훔친 것, 그리고 아테나의 방패에 자신과 페리클레스의 모습을 그려넣으려 했다는 혐의로 고발 당했습니다. 페리클레스의 다른 친구들인 아스파시아나 아낙사고라스 같은 인물들도 같은 시기에 박해를 받았습니다.


제우스의 올리브 나무

올림픽 경기의 마지막 5번째 날이면 우승자는 기념식에 참가하여 머리에 올리브 월계관을 쓰고 꽃 세례를 받았죠.

월계관은 신전 근처에 심은 제우스의 신성한 올리브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어린 소년이 황금 낫으로 가지를 다듬으면, 헬라노디카이가 받아 월계관을 만들었죠.

월계관 수여식 이후엔 큰 규모의 연회와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올림픽 우승자의 명단은 주로 파우사니아스와 에우세비우스 두 사람을 출처로 삼고 있습니다. 두 출처와 다른 문서를 교차 검증하면서 기원전 776년부터 서기 277년까지 대략 3500여명의 우승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죠. 그러나 이들 중 공식적으로 알려진 이들은 80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우승자들 중에선 아테네의 칼리아스처럼 주목할만한 운동선수가 있었습니다. 칼리아스는 기원전 472년에 판크라티온 경기에서 우승햇을 뿐만 아니라 4가지 범그리스 경기에서 각각 우승한 최초의 아테네인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로데스의 디아고라스는 기원전 464년 올림피아의 권투 경기에서 우승했고 그의 두 아들과 두 손자 역시 올림픽의 우승자였습니다.

하지만 고대의 운동선수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권투 선수였던 타소스의 테아게네스일 것입니다. 올림피아에서 테에게네스는 기원전 480년의 권투 경기와 기원전 476년의 판크라티온 경기에서 우승했습니다. 그는 지협 경기에서 10번, 네메아 제전에서 9번, 피티아 제전에서 3번 우승했고 다른 종교적 경기에서도 수차례 우승했습니다. 테아게네스는 죽은 후 동향 사람들에 의해 영웅이 되었고, 교단의 숭배를 받았습니다.


전설적인 창시자 펠롭스

펠롭스는 전설적인 그리스 영웅이자 올림픽 경기의 신화적 창시자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펠롭스는 아름다운 히포다메이아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피사의 왕, 오이노마오스는 둘의 결합을 반대했죠.

자신이 사위에게 살해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오이노마오스는 딸의 구혼자들에게 전차 경주를 신청한 뒤, 자신이 이기면 구혼자를 죽이는 걸로 유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펠롭스는 히포다메이아의 마음을 얻기로 결심했습니다.

경주 전에 펠롭스는 포세이돈의 도움을 받아 4마리의 날개 달린 말이 끄는 황금 전차를 받았습니다.

펠롭스는 경주에서 승리했고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은 반면, 오이노마오스는 자신의 말에 끌려다니다 죽었습니다.

이 유명한 경주의 시작은 제우스 신전 동쪽 박공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펠롭스의 아버지는 리디아에 있던 시필로스의 왕, 탄탈로스였습니다. 신들은 탄탈로스를 총애하여 신들의 연회에 초대하곤 했습니다.

어느 연회에서 탄탈로스는 신들을 시험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 펠롭스를 신들에게 대접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펠롭스를 토막내어 그 살점으로 스튜를 만들었죠. 자신의 딸 페르세포네를 잃어 산만해진 나머지 펠롭스의 어깨를 먹고 만 데메테르를 제외하면, 다른 신들은 왕의 음모를 알아채곤 스튜를 먹지 않았습니다.

제우스는 탄탈로스를 타르타로스로 보내 결코 갈증과 허기를 채울 수 없는 형벌에 처했습니다. 물이나 과실은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지점까지 멀어지게 되었고, 그의 이름은 ‘감질나다’라는 뜻인 ‘tantalize’란 단어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탄탈로스를 처리한 제우스는 펠롭스를 다시 짜맞춰 되살렸고, 데메테르가 먹어버린 어깨는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상아 보철로 메웠습니다.


헤라이온

헤라이온은 헤라에게 봉헌된 신전이었습니다.

이 성소는 가장 오래된 신전 중 하나로 기원전 59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성소의 기둥에는 달리기 경기로 구성된 육상 경기인 헤라이아에서 승리한 여성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4년마다 16명의 여인이 간택되어 헤라에게 바칠 면사포를 만들었습니다.

경기를 조직한 것은 이 여인들이었지만, 직접 경기에 참여하지는 않았습니다.

헤라이아는 남성의 전유물인 올림픽 경기와는 정반대로 여성 선수들에게 초점을 맞췄습니다.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헤아이온에는 여러 조각상들과 봉헌물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헤라와 제우스의 조작상 외에도 유명한 조각가 프라크시텔레스의 걸작, 아기 디오니소스를 든 헤르메스의 대리석 조각상이 있었는데, 이 조각상은 오늘날에도 남아있습니다. 헤스페리데스, 아테나, 아폴론, 데메테르, 코레를 비롯해 파우사니아스가 언급했던 다른 조각상들은 실전되었습니다.

파우사니아스는 코린토스의 첫번째 독재자인 키프셀로스의 상자 등 다양한 공물들도 언급했습니다. 키프셀로스가 아기였던 무렵, 그의 어머니는 도시의 권력을 잡으려던 바키아다이 가문으로부터 아들을 숨기기 위해 상자에 넣었습니다. 키프셀로스는 이후 신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상자를 올림피아에 바쳤습니다.

신전에는 엘리스인들이 중재했던 올림픽 경기동안의 평화조약이 각인된 이피토스의 원판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올림픽 우승자를 위한 올리브 관을 전시하던 금과 상아로 만들어진 콜로테스의 탁자도 있었습니다.

이 신전 옆에는 1936년 이래로 현대의 올림픽 성화를 밝히게 된 헤라의 제단이 있었습니다.


헤라

헤라는 여성, 결혼, 가족, 출산의 여신이었습니다.

헤라는 신들의 여왕으로 남매이자 남편인 제우스와 함께 올림포스 산을 다스렸습니다.

많은 신화 속 이야기에선 제우스의 수많은 연인들과 사생아들 때문에 속을 썩이는 모습으로 그려지죠.

그리스 예술에서, 헤라는 기품과 위엄이 넘치는 모습으로, 대개 왕관을 쓰거나 옥좌에 앉은 것으로 묘사됩니다.

또한 다산과 죽음을 상징하는 석류를 들고 있는 모습도 종종 보입니다.

헤라의 교단은 그리스 전역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고 올림피아에서는 헤라의 모습을 담은 동전을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헤라는 여러 신화에 등장했습니다. 유명한 일화 중 하나로는 아프로디테, 헤라, 아테나가 외모로 경쟁했던 파리스의 심판이 있습니다.

펠레우스의 결혼식에는 불화의 여신 에리스를 제외한 모든 신이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결혼식에 참석하려 했던 에리스는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돌아가야했죠. 분노한 에리스는 연회장에 ‘가장 아리따운 여신에게’ 혹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적힌 황금 사과를 던졌습니다. 아프로디테, 헤라, 아테나 모두 자신이 가장 아름다우니 사과를 차지할 정당한 주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무도 여신들의 다툼을 중재하려들지 않자, 제우스는 헤르메스에게 여신들을 데리고 이다 산으로 가서 트로이의 왕인 프리암의 아들 파리스에게 결정하게 하라고 명했습니다.

여신들은 서약으로 파리스를 매수하려 했죠. 헤라는 아시아를 지배하게 해주겠노라 말했고, 아테나는 지혜, 명성, 영광을 주겠다고,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파르타의 헬레나를 부인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해 다른 두 여신을 격분하게 했고, 이는 트로이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헤카톰

올림픽 경기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축제의 세번째 날에 있던 행사였습니다.

행사는 선수들과 헬라노디카이, 동물들의 행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행렬은 제우스 신전에 도착하기 전까지 알티스를 돌아다녔습니다.

그 후 동물들은 제우스의 제단 앞으로 끌려나와 제물로 바쳐졌죠.

이 희생의식은 헤카톰이라 불렸는데, 이 단어는 본디 100마리의 황소를 바친다는 의미였습니다.

헤카톰에 바친 동물들의 뼈와 다리는 불태워진 뒤 이전 희생의식의 잿더미 위로 옮겨졌습니다.

반면 동물들의 고기는 그날 저녁에 열리는 대연회를 위해 보관했습니다.

올림피아 성소는 고대의 종교적 장소입니다. 경기가 창시되기 훨씬 이전 시대에, 알티스는 가이아의 예언자가 기거하던 곳이었습니다. 가이아는 대지 그 자체를 인격화한 존재로 여겨졌던 태초의 그리스 신이었습니다. 여신의 예언자는 이후 제우스 우라노스의 예언자로 대체 되었지만, 두 예언자가 같은 시대에 공존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제우스의 예언자도 결국은 사라지고 말았는데, 아마도 델포이나 도도나 같은 주요한 예언자 성소의 발달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올림피아 점성술의 계보는 점술사의 형태로 이어졌습니다.

점술사는 올림피아의 주요 신관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희생된 동물의 내장을 살펴 제우스의 뜻을 해석해내는 창자점이란 의식을 주관했죠.


제우스 신전

올림픽 경기는 제우스에게 헌정 되었으며, 모든 의식과 경기는 제우스의 명예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올림피아 성소에서 가장 큰 신전이 제우스 신전이란 사실은 놀랄 일도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신전은 신관에게만 허용 되었지만, 제우스 신전의 경우에는 올림피아를 방문한 모두에게 열려있었습니다.

신전을 개방한 것은 신전 벽 안에 서있는 황금과 상아로 만든 제우스 조각상을 과시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이 신전에는 올림픽 축제의 창립 신화에 대한 2가지 전승이 모두 묘사되어 있습니다.

동쪽 박공벽에는 펠롭스와 오이노마오스의 전설적인 경주 장면을 보여줍니다.

반면 사원의 메토스1)소간벽에는 경기의 또 다른 신화적 창시자인 헤라클레스의 12과업이 묘사되어 있죠.

제우스 신전은 올림피아에서 가장 큰 신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펠로폰네소스 지역을 통틀어 가장 거대한 신전이었습니다.


제우스

제우스는 하늘과 천둥의 신이자 올림피아의 왕이었습니다. 제우스는 올림포스 산에 있는 자신의 거처에서 세상을 통치했습니다.

티탄인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는 티타노마키아로 알려진 위대한 전쟁 끝에 아버지를 타도하고 티탄들을 몰아냈습니다.

제우스는 부인인 헤라와의 사이에서 아레스, 헤파이스토스, 헤베와 에일레이티이아를 낳았습니다.

헤라 이외의 여인들과도 여러 아이들을 낳았지만, 여기에 다 나열하기에는 공간이 부족하군요.

그의 별칭들을 통해 알 수 있듯, 제우스는 인간들의 삶을 통제하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예를 들어 ‘호르키오스’라는 칭호는 그에게 서약의 수호자 자격을, ‘제니오스’라는 이름은 환대의 수호자라는 의미로 제우스에게 바쳐졌습니다.

그리스 예술에서 제우스는 왕의 지위에 걸맞게, 대개 천둥을 들고 옥좌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제우스는 수많은 인간 여인들과 혼외 치정에 얽히면서 질투심이 많았던 헤라의 분노를 촉발하곤 했습니다. 불륜 관계를 통해 여러 그리스 영웅들을 낳기도 했죠.

제우스는 상대를 유혹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안티오페에게는 사티로스의 모습으로, 레다에게는 백조의 모습으로, 에우로페에겐 황소의 모습으로 접근했죠. 남편 암피트리온인 척하며 알크메네에게 접근했던 경우처럼, 제우스는 가끔 다른 인간을 사칭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태어난 아이가 헤라클레스였죠.


제우스의 금과 상아 조각상

제우스 신전은 황금과 상아로 만든 제우스 조각상이 있는 곳으로,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입니다.

황금, 상아, 목재로 만든 조각상은 유명한 예술가 피디아스 작품이었습니다.

13m 높이의 조각상은 장엄한 외관만큼이나 유지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목재와 상아가 갈라지고 부패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기름을 써야 했죠.

이 조각상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지만, 파우사니아스의 세밀한 묘사 덕분에 그 유산의 명맥을 이을 수 있었습니다.

고대 7대 불가사의는 고대 시대의 경이로운 7개 건축물을 나열한 목록입니다. 7대 불가사의 목록의 가장 오래된 판본은 기원전 2~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시돈의 안티파트로스가 남긴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가장 오래된 불가사의 중 오늘날까지 남은 것은 기자의 대피라미드 뿐이죠.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할리카르나소스 영묘,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바빌론의 공중 정원, 로도스의 거상을 포함한 다른 모든 불가사의는 파괴되었습니다.

기원전 280년, 불가사의 중 가장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로도스의 거상은 건설된 지 50년만에 지진으로 파괴 되면서 가장 짧게 존속했죠.

각주   [ + ]

1. 소간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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