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출생 1820년 5월 12일

Cap 2015-11-24 14-42-19-406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어릴때부터 신념과 확신에 따라 행동했다. 그녀는 어릴때부터 간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지만 부모는 간호사가 하류층의 직업이라며 만류했다. 이후 나이팅게일은 17살때 하느님으로부터 간호사가 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연합에 이야기한다.

─하느님도 참 과학적이기도 하시지.

나이팅게일처럼 세상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을 헐뜯을 생각은 없지만, 너무 편리한 얘기 아닌가? 그럼 하느님이 배관공이 되라고 했으면 어떻게 됐을건가.─

어쨌든 나이팅게일은 간호사 수업을 받았고, 1854년에 크림 전쟁이 터지자 전선으로 나간다. 정말 바빴겠지. 직접 모집한 자원 간호사 38명과 수녀 15명을 데리고 나이팅게일은 부상병 간호를 관리하게 된다. 글쎄, 이게 정말 좋은 생각이었을까? 어쨌든 나이팅게일은 좋은 간호사였으며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먼저 교육을 받아야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1855년에 전쟁터에서 돌아온 나이팅게일은 전쟁 중에 간호사를 교육하기위한 나이팅게일 기금을 설립한다. 1859년에는 ‘간호학 개론’을 출간했고1)이 책은 이후 간호사 교육의 표본으로 사용된다. 1860년에는 성 토마스 병원에 나이팅게일 교육 학교를 설립한다.  그리고 남은 여생을 여성의 권리 보장 운동에 보냈으며, 특히 의료에서 위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은 후에는 런던과 인도의 위생 개선에도 힘썼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1910년 8월 13일에 90세의 나이로 잠을 자던 중에 사망했다. 그녀의 업적은 위대하기는 하지만, 오늘날의 학자들은 여성의 권리를 주장했으면서 여성의 의사가 되는 것이나 여성의 투표권에는 반대했던 그녀의 모순성에 대해 지적하기도 한다. 좀 이상하긴 하다.

각주   [ + ]

1. 이 책은 이후 간호사 교육의 표본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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