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삼부회

삼부회는 프랑스 사회를 구성하는 세 계층이 모인 회의를 뜻한다. 제 1계급인 성직자, 제 2계급인 귀족, 제 3계급인 평민의 대표자가 참석하여 토론하는 장이었다. 삼부회는 영국 의회 같은 입법기관은 아니었으며, 왕이 입법권을 가진 상태에서 자문 역할을 수행했다.

─왕으로 살면 어떤 기분일지 가끔 상상해보게 된단 말이지. 나라면 일단 모든 범죄를 불법행위로 규정할 테다. ㅎㅎㅎ 뻥이야. 대충 뭐 그런 거. 웃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제로 삼부회를 소집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고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열린 삼부회는 1614년이었다. 그 후 1789년 5월과 6월에 걸친 몇주간 삼부회가 열려 프랑스 왕실이 직면한 재정 위기를 해결할 방법을 강구했다. 재정 위기에 봉착하기까지에는 프랑스가 미국 독립혁명에 무리하게 자금을 대준 것도 이유가 됐다. 신분별 투표권을 행사할 것인가, 아니면 1인당 한 표씩을 행사할 것인가를 두고, 삼부회는 첫 안건을 논의하던 중 이미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표를 행사할 경우 이는 가장 수가 많은 제 3 신분, 즉 평민이 유리해지게 되는 것이었다.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에서, 제 3계급의 대표자들은 주요 논점인 재정난국 타개가 아닌 정치적 개혁안을 논하기 시작했다. 평민 대표들은 자기들의 주장이 관철될 가망이 없어 보이자, 따로 모여 국민 의회1)Assemblee Nationale를 구성했다. 제 1계급과 제 2계급도 이 의회에 초청되었으나 이 국민 의회의 구성이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너무도 명백했다.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었다.

각주   [ + ]

1. Assemblee Nation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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