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과 패션

염색과 패션

그리스에선 조개, 곤충, 식물을 사용한 천연염료로 직물과 의복을 염색했습니다.

그리스 전역의 숙련공들은 이런 원료로부터 염료를 추출하여 다른 성분과 섞어 다양한 색을 창출했습니다.

염색 과정은 형언할 수 없이 지독한 악취를 자아냈던 것으로 추정되며, 고대의 작가들도 이 작업에서 풍기는 악취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고전기에, 가죽 공예는 매우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리스에는 무두질할 가죽을 제공해줄 소가 많았지만, 그리스인들은 트라키아, 키레네, 시칠리아 같은 무역 중심지에서 생가죽을 수입하는 편을 선호했습니다. 대부분의 무두질 작업장은 강한 냄새 때문에 거주지역 외곽에서 작업했습니다.

무두질은 생가죽을 물에 담가 세척하고 연화한 뒤, 가죽을 두들겨 살점과 지방을 제거하는 작업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털이 부드러워지도록 생가죽을 오줌 섞은 물에 담그거나 알칼리성 석회로 덮은 다음 칼로 털을 긁어냈습니다. 다음으로 물과 동물의 대변을 섞은 통에 넣고 연화한 다음 때리고 치댔습니다. 마지막으로 생가죽을 틀에 펼친 뒤, 물에 나무껍질을 으깨 넣은 혼합물에 담가 더 부드럽게 만들고, 방수처리를 했으며, 박테리아에 잘 견딜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뿔소라 낚시

뿔소라는 지중해에 사는 3종의 연체동물을 포괄적으로 부르는 이름입니다.

장인은 뿔소라의 분비물을 사용해 고대에서 가장 비싸고 유명한 ‘티로스의 자주색’ 염료를 만들었습니다.

낚아올리는 방식은 연체동물의 종에 따라 달라졌죠.

얕은 물일 경우엔 어부들이 잠수해 연체동물을 잡으면 그만이었지만, 너무 깊은 곳에 서식할 경우에는 통발을 설치했습니다.

육식성이었던 뿔소라들은 죽은 동물의 고기를 미끼로 삼으면 꼬여들었거든요.

이 연체동물들은 반드시 생포해야 했습니다. 이 귀한 자색 액체는 연체동물이 죽을때만 분비됐기 때문입니다.

염색 기술의 기원은 크레타였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고전기 그리스에 염색이 널리퍼지기 전부터 말이죠. 해양 연체동물이 필요했던 까닭에, 염색과 관련된 대부분의 활동은 해안에서 이뤄졌습니다.

고전기 당시, 아테네와 올린토스에는 대규모 염색 작업장이 있었습니다. 테살리아의 멜리보이아와 아르골리스의 헤르미오네 마을은 염색으로 유명했죠.

그리스의 작가 파우사니아스는 포키스의 마을이었던 불리스 인구의 절반은 자주색을 뿜어내는 뿔소라 낚시에 전념한다고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주색 염료를 만들기위한 최고의 뿔소라가 있는 라코니아 해안을 찬양하기도 했습니다. 라코니아 해안과 떨어져있는 키테라의 섬은 ‘자주색 섬’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뿔소라 열기

염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라색 액체는 뿔소라의 분비샘에서 추출했습니다.

액체를 수집하기위해 업자들은 뿔소라 껍질을 칼로 부숴열었고, 작은 뿔소라일 경우에는 돌로 짓이겼습니다.

각각의 연체동물들이 분비하는 액체의 양이 너무 적었던 나머지, 1g의 추출물을 만드는데만 수천마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랬기에 붙잡은 연체동물들은 충분한 양의 염료를 생산할 수 있을 정도로 모일때까지 바닷물에 담근 바구니에 넣어 살려둬야했습니다.

일부 고고학 현장에서는 자주색 염료를 만들기위한 장비와 염색 직물로 가득한 작은 작업용 집 한채가 발견됐습니다. 한편 다른 현장에서는 비슷한 염색 장비가 있는 집 여러채가 인접한 곳이 발견돼 염색 공동체가 존재했음을 시사했습니다.

대규모 염색은 숙련된 노예와 자유인 노동자에 의해 수행됐습니다. 염색 사업의 운영은 부유한 사람들의 몫이었지만, 이런 부유한 가문의 일원들은 생산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불리기 작업과 염장

연체동물의 분비샘은 소금과 뒤섞인 상태로 사흘에 걸쳐 분해됐습니다.

그 후에 생긴 혼합물은 통으로 옮겨져 본래 양의 1/16 수준으로 걸쭉하게 졸아들때까지 끓여야했죠.

염색업자들은 이 혼합물을 휘저어 일체의 불순물을 제거했습니다.

이 과정은 고대의 작가들이 악평을 아끼지않았던 악취를 풍기곤 했죠.

고고학적 증거와 고대 작가들의 증언으로 염색 설비를 재해석하고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고대의 염색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핵심적인 고고학 현장 중 하나가 이스미아 성소 인근의 라히 언덕에 존재합니다. 라히 언덕에는 통과 수조들이 설치돼있던 것은 물론 거대한 저수조와 우물도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발견된 자주색 고둥 껍데기와 베틀의 무게추는 이곳이 염색과 길쌈의 중심지였음을 드러내줍니다.


염색

염색업자는 보라색 액체에 원모를 담가 빛깔을 확인했습니다.

이 빛깔은 액체의 온도를 조절하거나 양모를 담그는 시간을 달리하는 것으로 조정할 수 있었습니다. 오래 담글수록 진한 색을 얻을 수 있었죠.

양모는 빛깔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실을 잣기 전에 한번, 베를 짜기 전에 다시 한번 염색됐습니다.

뿔소라의 자주색은 양모에는 쉽게 물들었지만, 아마를 비롯한 다른 섬유에는 잘 스며들지 않았습니다.

페니키아의 전설에 따르면 자주색 염료는 신 멜카트와 님프 티로스가 개와 함께 해안을 산책하다가 발견했다고 합니다. 개가 거대한 뿔소라를 깨물자, 콧잔등에 자주색 얼룩이 남았죠. 그 얼룩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티로스는 옷을 같은 색으로 염색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자주색 의복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같은 작품에서도 언급되며 보통 왕이나 영웅이 입었습니다. 예를들어, 트로이의 헬레네는 트로이와 아카이아 간의 전투를 묘사한 거대한 보라색 천을 만들었고 페넬로페를 길을 떠나는 자신의 남편 오디세우스에게 자주색 양모 망토를 줬습니다.

고전기의 그리스 화가들 사이에서 자주색 의복은 영웅과 신의 옷이라는 것이 통념이었습니다.


색상과 장식

대부분의 그리스 의복은 자르거나 바느질하지 않은 직사각형의 직물로 만들어졌습니다.

보통 허리띠나 핀, 단추를 사용해 몸에 둘렀죠.

염색은 이런 의복들에 보다 독특한 스타일을 더했습니다.

또한 다양한 장식을 엮어내거나 그리기도 했습니다. 이 장식들은 동물이나 사람의 형상, 혹은 신화적인 장면들을 묘사했죠.

자주색 염료를 추출하는데는 조개류가 사용됐지만, 다른 색상의 염료는 다른 재료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노란색은 사프론에서 얻을 수 있었고, 붉은색은 꼭두서니나 케르메스 속에 속하는 곤충에서 추출했으며, 파란색은 대청이라는 식물에서 얻었습니다.

조개류로 만든 염료는 식물 염료보다 밝고 짙은 색을 냈지만, 가격도 더 비쌌습니다. 파란색과 붉은색 염료를 다른 비율로 섞어 저렴한 자주색 염료를 만들 수도 있었죠.


의복과 직물

직물 제조와 무역은 고대 아테네에 가장 수익성이 뛰어난 사업 중 하나였습니다.

직물은 대개 양모나 아마로 짜곤 했는데, 가장 널리 쓰인 것은 양모였습니다.

여성들이 일상복을 만들기는 했지만, 마찬가지 욕구를 충족시키기위한 전문적인 작업장을 운영하는 남성들도 있었습니다.

나머지 직물들은 주인인 방직공과 축융공, 염색업자들의 감독을 받는 노예와 노동자들이 만들었습니다.

오노스라고도 불린 에피네트론은 양모로 가는 실을 잣는데 사용한 도구였습니다.

수백개의 도자기 에피네트론이 발견됐는데, 이것들은 고전기동안 아테네의 작업장에서 생산됐습니다. 몇몇 학자들에 따르면 이 도구의 초기 형태는 나무와 가죽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에피네트론은 흔히 결혼과 관련되곤 했고 방적, 직조 혹은 신화적인 결혼식을 묘사하는 장면이 장식돼 있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지위로서의 직물

의복은 보온만을 위한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의복은 성별, 지위, 인종을 드러내는 사회적 특징으로 사용되기도 했죠.

이런 특징들은 의복과 장신구뿐만 아니라 보석, 머리모양, 향수, 화장을 통해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부유한 그리스인들은 대개 고품질의 의복을 입었고, 금, 은과 보석으로 만든 장신구로 치장했습니다.

양산과 부채 또한 고위층의 유행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이런 물품을 들고 다니는 건 대개 동행했던 노예들이었죠.

고전기동안, 그리스의 장신구 제작은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더욱 정교해졌습니다.

전형적인 장신구에는 귀걸이, 핀, 팔찌, 완장, 반지, 보관, 그리고 다른 머리 장식품이 포함됐습니다. 고전기 말이면 이런 장신구들에 에메랄드, 진주, 자수정 같은 귀중한 보석을 세공해 넣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부유한 여성의 의복에는 보석을 수놓기도 했습니다.

장신구에는 식물이나 동물 문양, 혹은 신과 영웅의 모습을 새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의복과 마찬가지로 장신구 또한 지위와 부를 나타내는 상징이었고 대를 이어 물려주기도 했습니다. 장신구는 신에게 바치는 공물이나 장례식 매장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옷, 의복의 관리, 그리고 가치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그리스 의복은 페플로스, 키톤, 히마티온이었습니다.

페플로스는 주로 여성용 의복으로 몸길이 정도의 의복입니다.

접은 상태로 몸에 두른 뒤, 핀을 사용해 어깨 위로 고정하는 식으로 착용했죠.

키톤은 소매가 달린 긴 의복입니다.

발목까지 오는 키톤은 보통 여성용이었고, 남성은 더 짧은 키톤을 입었습니다.

히마티온은 키톤과 페플로스 위에 걸치는 망토였습니다.

일상복 외에도 결혼식이나 종교적 의식 같은 특별한 상황에선 입는 특별한 의복도 있었습니다.

노예와 어린 여성을 제외한 고전기 그리스의 많은 여성은 특정한 종류의 머리띠를 착용했습니다. 성인 여성은 보통 자신의 머리를 뒤로 넘겨 한갈래로 묶거나 그와 비슷한 머리를 했고, 어린 여자아이들의 머리 모양은 좀 더 느슨했죠.

대부분이 남성은 머리를 짧게 잘랐습니다. 반면, 턱수염과 콧수염은 개인의 취향과 패션에 달린 문제였죠. 엘리트 계층의 남성은 주목을 피하기위해 망토로 머리를 덮는 경우를 제외하면 머리를 가리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필로스1)원뿔)나 페타소스((넓은 챙 같은 모자는 태양과 악천후로부터 착용자를 보호했습니다. 이런 모자는 농부, 군인, 여행자가 으레 착용하곤 했습니다.

각주   [ + ]

1. 원뿔)나 페타소스((넓은 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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