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빌스 에이커

ACS_DB_Devils_Acre모든 것에는 흠이 있게 마련이고, 웨스트민스터 같은 부촌에도 범죄와 매춘 같은 문제가 많은 구역이 있었다. 토트힐 필즈1)찰스 디킨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데빌스 에이커는 사건이 너무도 많이 발생하여 경찰들도 진입을 꺼리는 곳이었다. 악명이 얼마나 높았으면 1850년대에 ‘슬럼‘이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게 만들 정도였다.

이 지역은 웨스트민스터 교회의 수도사들이 범죄자와 빚에 쫓기는 사람들을 숨겨주는데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토록 퇴락하게 되었다. 또한 질병이 많이 발생하여 웨스트민스터의 부유층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기도 했다. 이유야 어쨌든 데빌스 에이커는 런던 시민 대부분이 없어지기를 바랬던 옥의 티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웨스트민스터 교회와 의회 등에 가까웠던 데빌스 에이커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무도 신경쓰지 않던 화이트채플과는 달리 런던의 자선사업가들이 활동하기 좋은 곳이었다. 디킨스는 젊은 시절 기자 생활을 하면서 데빌스 에이커에 대한 자세한 기사를 썼으며, 1847년에는 백만장자인 앤젤라 버뎃 쿠츠와 함께 데빌스 에이커 창녀들을 위한 쉼터인 우라니아 코티지를 만들기도 했다. 또한 선교사들도 종교를 통해 빈민들을 구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선교활동을 했다. 자선사업가인 애들린 쿠퍼는 섀프츠베리 경의 도움을 받아 데빌스 에이커의 한 술집을 구매하여 지역 고아들을 위한 학교로 바꾸었다.

이러한 모든 노력과 함께, 런던 하수도 시스템이 건설되면서 데빌스 에이커에는 고급 주택들이 들어섰다. 하수도 시스템을 통해 인근 늪지의 배수가 원활해져서 지역 땅값이 갑자기 비싸졌다. 데빌스 에이커를 관통하는 빅토리아 스트리트가 만들어졌고, 지역 거주자들은 새로 지은 공공 지원 주택에 입주했다.

각주   [ + ]

1. 찰스 디킨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데빌스 에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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