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리

출생 1731년

charles_lee_texrip찰스 리는 독립 전쟁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영국 군인이었습니다.

리의 아버지는 영국군의 장군이었고, 그의 아들을 어렸을 때 군에 입대시켰습니다. 그는 성격 형성에 중요한 사춘기때 스위스에 있는 군사 아카데미에 입학했고, 1746년 리는 아버지가 있는 부대로 발령 받았습니다.

리는 1775년에 프랑스-인디언 전쟁 때문에 식민지에 왔습니다. 그는 에드워드 브라독의 휘하에 있다가 전투 중 부상 당한 후 티콘데로가 요새로 후송 되었습니다. 회복한 후에는 나이아가라 요새로 발령 받았죠. ─참 싸운 요새가 많아요.─ 그는 영국의 몬트리올 점령과 함께 식민지에서 퇴역했습니다.

리는 1760년에 영국으로 돌아왔고, 아마 경력을 연장하기 위해 돌아왔었을 겁니다. 그는 1761년에 소령으로 진급 했고 스페인과의 전투를 위해 포르투갈에 파견되었습니다. ─사실은 별로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나 봐요. 군에 반평생을 보내다니. 어우 토 나와.─ 아무튼 그 후, 리는 군대의 사기를 높이는 역할을 맡았고 그 후 영국 수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의 군 경력은 불가사의 하게도 완전히 날조되었습니다.


그는 영국군에서 저지른 일의 후폭풍을 두려워하며 1773년에 뉴욕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는 빠르게 애국자들의 후원자가 되었고 1775년 6월에는 소장의 계급과 함께 미국군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리는 조지 워싱턴의 명령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리는 그가 총사령관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리의 경험이 그 근거였습니다만, 그에게는 후퇴의 경력도 있었죠. 그리고 그의 성격도 영향을 주었을 겁니다. 그는 쉽게 화를 내고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성격이었거든요. ─사장님들은 그런 거 좋아하시죠.─

또한 리는 조금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난히 개를 좋아했고, 계속 개들에 둘러싸여 있었으며, 특히 그 중에서도 포메라니안 종을 좋아했습니다. ─작은 개를 좋아하는 남자는 믿지 말라는 말이 있지요.─ 그리고 그는 옷은 참 멋지게 입었습니다만 잘 닦지를 앉아서 그가 그렇게 좋아하는 개들과 유사한 냄새를 풍기고 다녔습니다. ─어우 토 나와─

그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리는 능숙한 지도자였고 군인들에게 인기가 있었습니다. 워싱턴은 그것을 알고 있었고, 허드슨 강 주변에 있는 요새 중 하나를 ‘리 요새’라고 이름 지어 그의 명예를 살려주었습니다. ─만약 워싱턴이 둘 사이의 관계가 악화된 다음 요새의 이름을 지었다면 그런 이름을 되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사실 시간이 지나면서 리는 점점 워싱턴과의 유대가 약해졌고, 그의 명령을 마지못해 따르게 되었습니다. 워싱턴이 1776년 뉴욕과 뉴저지를 통해 후퇴할 때, 그는 리가 후퇴 경로를 이끌라고 명령했습니다. 리는 하기는 했는데 아주 천천히 갔죠. 그 결과, 그는 군대의 뒤에 남겨져 1776년에 영국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마 5분에 한번씩 그의 피투성이 개들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걸어갔었겠지요.─

리에게는 다행히도, 그는 미국군에서의 역할을 끝내고 영국군 안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 말은 즉, 탈영병이 되는 대신, 뉴욕에서 불편하지 않게 대접 받았다는 소리죠. 그는 영국군으로부터 상당한 대접을 받았고, 누군가에게 저녁 식사의 손님으로 초대 받았습니다. 편안한 잠과 아침까지 포함된 풀 코스였죠. 그리고 돌아와서는, 그가 알고 있는 미국군에 대한 정보를 모두 불었습니다.


리가 뉴욕에서 풀려났을 때, 그는 미국군이 영국군을 이길 수 없다고 확신했고, 의회에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워싱턴이 몬머스에서 행군하는 영국군을 공격하라는 계획을 세웠을 때, 그 작전을 담당한 것이 바로 리였습니다.

전투가 시작되자, 리는 병사들에게 후퇴 명령을 내렸습니다. ─현대 역사가들은 도대체 왜 그랬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마 그가 개들을 관리하는 걸 잊어버려서 막사에 돌아갈 필요가 있었을지도.─ 워싱턴은 후퇴를 중단하고 직접 명령을 내렸고, 두 군대는 접전을 벌였으며, 리의 명성은 철저하게 곤두박질 쳤습니다. 그 후, 리는 그의 명성을 되돌리기 위해 군법 회의에 회부되거나 사과하기를 원했습니다.

워싱턴은 군법 회의를 선택했고, 그건 리가 별로 원하지 않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적을 앞에 두고 잘못된 판단을 했고, 수치스럽고 무질서한 후퇴를 만들었으며, 총사령관으로서 부적절하다’는 죄명을 받았습니다. 오직 1년간 형이 유예 되었고, 그 1년이 지나면 그는 워싱턴의 연설을 통해 군대에서 이름이 영원히 사라질 운명이었습니다.

리는 버지니아에 있는 그의 집으로 돌아가 개들을 키우며 여생을 보냈습니다. 그가 죽은 후, 그를 위해 군사 장례식까지 거행되었습니다. ─죽은 사람을 더이상 모욕할 수는 없다는 뜻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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