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호니골드

출생 1680년대 중엽
사망 1719년

벤자민 호니골드의 출생지는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으나 잉글랜드의 노포크 지방인 듯하다. 그 외에 어린 시절에 대한 정보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서인도에서 해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무렵인 1713년에서 1714년을 다루고 있다.

호니골드는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이 끝난 후 등장한 최초의 해적에 속하며, 따라서 그는 아마도 전쟁 이후 찾아온 평화 때문에 돈벌이를 찾지 못한 수백명의 사략선원 중 한명이었을 것이다. 다른 영국 출신 뱃사람들이 대개 그러했듯, 호니골드 역시 바하마 제도에서 살다시피 하다가 나중에 나소에 정착했다. 그는 나소에서 비로소 온전한 해적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했지만, 그 자신을 스스로 사략꾼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초기에는 그러했다.

호니골드는 능숙한 뱃사람이자 노련한 전략가였지만, 대해적이 되는 데 필요한 무자비한 성품은 부족한 편이어서 1716년까지는 조국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영국 선박은 공격하지 않기도 했다.

(JM : 도의가 있는 해적이라… 내 생각일 뿐이지만… 우리가 에드워드 켄웨이를 건드리는 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이 사람 어마어마한 영웅이 될 수도 있겠는데.)

(ML : 나도 그렇게 생각해, J. 게다가 이 사람은 수염도 별로 없어서 마음에 들어. 이 시대 남자들 수염은 무슨 새둥지 같잖아. 우웩.)

호니골드는 1717년과 1718년에도 해적 활동을 계속했고 나소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의 조지 1세가 불법 행위를 그만두고 해적질을 그만둘 의사가 있다면 어떤 해적에게는 사면장을 준다는 소문이 퍼지자, 호니골드는 앞일을 알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고민한 끝에 사면을 받아들일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의 가까운 동료 해적은1)특히 찰스 베인 사면을 받는 것은 비겁한 항복이라고 생각했기에 호니골드의 고민은 그들을 격노하게 했다.

그러던 중 1718년 어느 달에 우즈 로저스 선장이 대형 범선 7척으로 구성된 함대를 끌고 나소에 상륙하여 국왕이 자신을 이곳의 총독으로 임명했다고 선언했다. 바하마 제도의 해적을 모두 소탕하라는 명령을 받고 나소에 온 로저스 총독은 가벼이 볼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호니골드는 열성적인 지지자도 거의 없는 해적 공화국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에 진작부터 환멸을 느꼈던 터라, 로저스 총독에게 항복하고 사면을 받았다.

이듬해 호니골드는 로저스 총독에게 존경심을 느끼고 되도록 자주 그를 위해 사략선을 탔다. 차츰차츰 그의 명성은 해적이었을 때보다 훨씬 높아졌다. 그러나 사략 행위 중 옛 친구인 해적 에드워드 켄웨이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그의 행운도 끝났다.

벤자민 호니골드는 1719년 여름, 서인도의 서해안에서 수수께끼 같은 상황에 휘말려 사망했다.

각주   [ + ]

1. 특히 찰스 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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