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안 푸키에-탕빌

ACU_Désirée_Clary1746년 출생. 1792년 7월 17일 설치된 혁명재판소의 판사가 되어 왕정 폐지 후 8월 10일에 체포된 왕당파들을 대판에 회부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검사가 되었다. 1793년 9월 공포 정치가 극에 달하자 탕빌은 “머리통이 기왓장처럼 떨어지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래. ‘머리통이 기왓장처럼 떨어지고 있다’라… 그 시대에는 잘 들어맞는 말이었지. 18세기 프랑스에는 제대로 된 지붕수리공이 없었으니까. 기와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을 거라고.─

검사로서 탕빌은 범죄자들을 기소하여 ‘정의를 실현할‘ 책임이 있었다. 이는 대체로 닥치는대로 사형 선고를 내리거나 공안위원회의 명령을 따른다는 의미였다.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한 이튿날, 탕빌은 파면당했다. 1794년 12월 재판에 회부된 그는 “나는 국민 공회의 도끼 노릇을 한 것뿐이다. 왜 도끼를 벌주려 하는가?”라고 주장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목수가 연장 탓하는게 아니라, 아예 연장이라고 주장하는군. 그러고보니 이 사람 재밌는 말을 좀 했네.─

1795년 5월 7일 자신이 숱한 사람들을 보냈던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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