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일라 핫산의 음성 메모

안녕이다. 멍청이들아!

날짜2006년 3월 21일 오후 11시 53분
위치캘리포니아 주 버클리

잘 있어라, 버클리! 2006년 3월 21일. 레일라 핫산 대학교 중퇴하다!

그래, 무어 교수. 그 제인 에어 레포트는 쓰지 않을 거야. 난 취직한 몸이라고! 다음 주에 필라델피아로 간단 말씀.

이 진부한 학교생활 따위? 그딴 건 내 알 바 아니지. 엄마 아빠는 기겁하시지만, 언젠간 받아들이실 거다. 난 실질적이고, 진짜 돈을 버는 일을 할 것이다. 그러면 고향 집을 찾을 여유가 생기겠지. 더 자주 찾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소피아는 내게 어울리는 자리를 앱스테르고에 마련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회로판과 펜치 하나로 뭘 해낼 수 있는지 보여주기만 한다면.

그렇다. 나는 이제 열심히 일해서 소피아의 ‘특별 프로젝트’에 들어갈 수 있는 자리에 올라야 한다. 하지만 상관 없다. 머지 않아 소피아나 소피아의 아버지 앨런 리킨 씨가 내 능력을 알아보고 애니머스 프로젝트를 도와달라고 할테니까.


따분하고 지겨워서 죽을 지경

날짜2006년 7월 7일 오전 10시 3분
위치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나는 기필코 화장실에서 이 와이어도 최신판을 다른 사람들이 종일 연구실에 앉아 읽는 양보다 더 많이 읽어내고야 말테다. ‘바디밴드’? 제정신인가? 이게 무슨 의미 없는 짓이지? 그냥 돌아가서…

잠깐. 어쩌면 이런 게 바로 내가 해야할 일일지도 몰라. 사람들이 완전히 흥분해서, 애니머스 프로젝트의 문을 열게 만들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앱스테르고의 체력단련실은 그런 걸 해내기엔 너무 작다.

지겨워 죽을 것 같다. 하지만 지루함만큼 사람의 창의력을 자극하는 것도 없지. 좋았어. 바디밴드의 언어 처리 프로그램을 조금 개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다시 집으로

날짜2014년 1월 6일 오후 2시 15분
위치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앱스테르고 역사 연구 부서

옳은 결정을 내릴 땐 항상 마음이 편하다. 내 물건들은 그대로다. 내 사물함 냄새도 변함없고. 마치 내가 떠난 적이 없던 것처럼.

하지만 난 떠났지… 그리고 내가 지금 아는 사실들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로 인해 과연 내가 역사 연구 부서에서 수행할 일들이 어떻게 변화할까? 어려운 질문이군. 확실히 뭔가 변하긴 하겠지.

아단트가 점심을 예약했다. 비싼 식당은 아니지만. 내게 디에나 기어리를 만나보라고 했다. 나의 새 담당 의사다. 어디 옥수수 농장 출신이라는데, 사람은 괜찮아 보인다. 내 책상 위에 집에서 직접 만든 쿠키를 올려놓다니 믿을 수가 없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저번 주말에 바람 맞은 얘길 털어놓았는지 모르겠다. 난 일터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는 하는 법이 없는데. 적어도 내가 그 사람을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나 보다.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신뢰는 필수적이다. 앱스테르고의 전술 부원 대다수가 신뢰를 우선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 심히 유감이다.


할로윈 데이

날짜2016년 10월 31일 오후 8시 59분
위치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레일라의 집

됐다. 휴대형 애니머스. 공식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이메일이 잔뜩 날아오고 마드리드에서도 한밤중에 전화가 걸려오는 걸 보면… 공들인 효과가 있긴 있나보다.

소피아, 내 연구를 써먹기만 하고 어둠 속에 처박아둘 줄 미리 알았다면, 절대 당신을 따라오지 않았을 거야. 꺼져! 우리 집에는 사탕 없어! 인생에 공짜는 없어. 절대로!

애니머스… 그래… 내 조언이 없었다면, 애니머스는 완성되지도 못했어. 놈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봐… 방열판, VRM, 전류량 강화를 위한 트랜지스터… 내가 그 사람들에게 이걸 쓰면 실패를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

이게 뭐지? 안녕, DNA 인식 모듈! 네가 우리 집 초인종 눌렀니? 아마 어디에 준비한 사탕이 있을 텐데…


두건 아래

날짜2016년 11월 25일 오전 2시 53분
위치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레일라의 집

난 소피아가 인재를 고르는 눈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마드리드에 있는 시설은… 으으,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식은 죽 먹기잖아. 유전자 메모리 정보를 분석해서 좀 더 작은 데이터 풀에 적용하기만 하면 되는데.

불완전한 샘플이라도 처리하면 신뢰성 있는 높은 단계의 동기화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인식 모듈과 해독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마드리드 쪽은 이정도 가지고도 성과를 낸 거라며 자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굳어버린 채소 카페와 플라즈마 스크린 3개, 분해된 애니머스를 늘어놓고 라 빅토리아 데뷔 앨범이나 반복재생하면서 파티 중이고.

건배! 밀턴의 DNA를 어떻게 썼는지 알면 디에나가 불같이 화를 내겠지만, 내가 도움을 요청할 때 본인도 예상하지 않았을까? 애니머스를 시험해볼 누군가의 유전적 프로파일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눈에 띄었을 뿐이다.


디에나라는 이름의 여자

날짜2017년 10월 20일 오전 9시 3분
위치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앱스테르고 역사 연구 부서

나는 아침 브리핑이 좋다. 짧고, 허튼 소리도 별로 안하고, 커피도 공짜로 주거든.

이번 주에는 쉴 시간이 없다. 이틀 후 나와 디에나는 알렉산드리아행 비행기에 탈 예정이다.

해서웨이는 왜 그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송 작전에 투입 됐는데… 유물을 이송한다. ‘요주의 인물’ 같은 거라면, 서두르는 걸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은 몇시간 만에 지구 반대편으로 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2천년동안이나 한자리에 서있던 유물을 이송한다? 그건 어디 도망가지도 않을텐데. ‘상급 요주의 유물’이라,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런 것들은 항상 보면 쓰레기 같은 도자기 파편이나 오래된 책 반쪽 같은 것들이다. 내 애니머스는 DNA에만 작동하지, 식기에는 작동하지 않는데.

2013년 이후 이집트에 가는 건 처음이라 기분이 이상할 것 같다. 그때는, 내 뿌리를 조사하다가 곤란한 일만 잔뜩 생겼지. 디에나도 같이 가서 다행이다. 디에나는 항상 내가 멍청한 짓을 못하게 말려주니까.


주요 광맥 발견

날짜2017년 10월 26일 오후 4시 36분
위치이집트 카타라 분지

그 ‘상급 요주의 유물’이라는 게 ‘상급 요주의 인물’인 것 같다. 미라라니. 이건 절호의 기회야.

디에나에게는 우리 임무의 한계를 조금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디에나는 화를 냈지만, 본인도 내심 나의 애니머스 현장 시험을 기대하고 있다는 걸 안다. 앱스테르고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알아채면 신경을 쓰기야 하겠지만, 알아채지 못할 테니까. 해서웨이의 정보력은 대재앙 수준이다. 이번 이송에서 뭘 하는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어.

현장 기술자 일은 즐겁지만, 그게 내가 버클리에서 뛰쳐나온 이유는 아니다. 만약 내 애니머스로 이만큼 오래된 DNA를 체험할 수 있고, 인식기가 유실된 코돈을 모델화해 타인의 유전자 메모리까지 추정할 수 있게 된다면, 소피아는 앱스테르고를 잃게 되겠지…

앱스테르고는 내게 넙죽 엎드리고, 내 이름은 워렉 비딕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다. 그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하다. 마드리드의 시설이 폭발한 건 안타깝지만, 곧 새로운 시설을 지을 것이다. 새 시설은 필라델피아에 지어질 테고, 수석 기술자는 바로 나, 레일라 핫산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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