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데미에르 13일

테르미도르1)혁명력의 제11월 9일, 즉 1794년 7월 27일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게 되면서 공포정치도 막을 내렸다. 이제 혁명은 보다 문명화된 국면에 이르렀다. 이는 곧 왕당파의 재기를 의미하기도 하였으며, 1795년, 국민공회는 그들이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걱정하게 되었다. 예방책의 일환으로, 1795년 8월 향후 양원의 의원 총 750명 가운데 500명이 의회를 구성하기로 한다는 이른바 ‘삼분법‘이 공표되었다.

─권한 강화책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옳다. 안그래? 너무 시니컬해지는 건 싫어. ㅇㅈ? 어 ㅇㅈ.─

방데미에르 20일2)1795년 10월 중순로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고 파리의 왕당파는 이 법안을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데미에르 11일, 반란이 일어났다. 국민방위군의 일부가 가담했다.

국민공회는 바라에게 군사적 조치를 취할 것을 명했으며 현장에서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실질적인 군부 지도자 역할을 수행했다. 방데미에르 13일3)10월 5일, 2만5000명 가량의 폭동세력이 튈르리 궁전에 있는 국민 공회를 습격했다. 나폴레옹은 시가지에 다수의 대포4)조아생 뮈라가 조달함를 설치하였고, 바라의 명령을 받은 뒤 포병에게 발사를 지시했다. 포도탄은 시가전을 펼칠때 매우 유용한데, 이때 왕당파 300여명 가량을 죽일 수 있었다.

이 공로를 인정받은 나폴레옹은 ‘방데미에르 장군’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가 후에 엄청난 권력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 세간의 평이다.

─시위하는 군중에게 포도탄을 쏘면 얻는 명예라니 이것 참. 영웅났네, 영웅났어! 이때 일로 그에게 적대적인 자들도 생겼지만 말야.─

각주   [ + ]

1.혁명력의 제11월
2.1795년 10월 중순
3.10월 5일
4.조아생 뮈라가 조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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