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닝 가 10번지

ACS_DB_10_Downing_Street다우닝 가 10번지는 영국 수상의 관저로 전세계에 알려져있지만 1908년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이곳의 이름은 영국 내전 당시 올리버 크롬웰의 정보국장을 역임한 조지 다우닝의 이름을 딴 것이다. 내전이 끝날 무렵 왕실에서 권력을 회복하자 다우닝은 왕을 구워삶아 처형을 피하고 찰스 2세에게 충성할 것을 맹세했다. 다우닝 가 10번지에 건설된 최초의 관저에는 토마스 니벳 경이 거주했다.1)1581년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하사함. 니벳의 최대 업적은 웨스트민스터 궁전 테러를 계획했던 가이 포크스를 체포한 것이다. ─그 정도 했으면 집 한채는 받을 만하지.─

다우닝 가 10번지에 거주한 최초의 수상은 로버트 월폴 경이다. 조지 2세가 1732년에 월폴에게 다우닝 가 10번지 건물을 선물로 주었지만 월폴은 이곳을 수상의 관저로 사용하겠다는 조건 하에 거주를 수락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수상은 자택 거주를 선호했으므로 다우닝 가 10번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황폐해졌다. 벤자민 디즈레일리가 1868년에 수상으로 선출되었 당시 다우닝 가 10번지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칙칙하고 다 쓰러져가는‘ 상태였다. 디즈레일리는 의회에 관저 수리비를 요청했지만 개인 방을 다시 단장하는 데는 사비를 들여야했다.

각주   [ + ]

1.1581년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하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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