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품에 대한 소견서

멜라니 르메이 /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
앱스테르고 엔터테인먼트

담당자 귀하

고인이 되신, 앱스테르고 엔터테인먼트의 정보기술 디렉터로 재직한 존 스탠디쉬에 대해 진행중인 조사와 관련하여, 그가 2013년 11월 사망하기 직전에 보였던 기이한 행동에 대해 설명할 자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스탠디쉬와 함께 일했던 경험에 대해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먼저, 제가 존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가 앱스테르고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했던 기간은 고작 7개월 3일로 짧은 기간이었으며 그 기간에 저희는 업무와 관련된 얘기만을 나누었을 뿐입니다. 디렉터급 회의에서 매번 마주쳤고 그때그때 주요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가 오갈 경우 의견을 같이한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업무와 관련된 의견을 나누는 정도였고 그 이상의 친분은 없었습니다.

“사교적인 모임”이라 할만한 상황에서 그를 만난 것은 단 두번뿐이었습니다. 지난 2013년 6월 앱스테르고 엔터테인먼트 연례회의의 저녁 행사에서 본 게 처음이었는데, 그 해에는 행사가 몬트리올 올드포트 중심의 강변 공원에서 열렸었습니다. 날씨가 아주 좋은 저녁 시간이었고, 더워서인지 바에 마실 것을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저도 백포도주를 한잔 더 마시고 친구에겐 맥주 한잔을 사려고 줄을 서있었는데 존이 제 바로 뒤에 서있었어요.

그가 제게 인사를 건넸고 우리는 올리비에가 회의도중 공지했던 사항에 관해 이야기를 좀 나눴습니다. 그리곤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도 했죠. 제 기억으로는 그는 미국 메릴랜드의 작은 도시 출신이었습니다. 어디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요. 저는 그의 독특한 악센트가 어느지역 악센트인지 물었고, 존은 가족들과 여행을 많이 다녀서 그런 악센트가 생긴 것 같다고 했어요. 친구가 거의 없는,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은 인상이었어요. 그는 괜찮다고 웃어넘겼지만…

(그라마티카 : 아마 그의 말투를 좀 더 자세히 알아봤다면 최초문명이 사용했던 말투를 알아낼 수 있었을 거야.)

그리곤 당신 진행중이던 프로젝트 얘기로 화제를 돌렸죠. 그때 전 실험체 17의 사전제작 프로젝트에 한창이었거든요. 그에게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더니 존은 제게 앱스테르고 엔터테인먼트가 애니머스 1.28 구모델에도 접근권한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없을거라고 말해줬어요. 구모델은 헬릭스에 호환되지 않아서 앱스테르고 엔터테인먼트에는 쓸모가 없거든요. 그러자 존이 아쉽다고 말했어요. 왜냐고 이유를 묻자 “나의 지저분한 과거로 시간여행을 가고 싶기 때문”이라는 의미로 답을 했던 것 같아요.

(그라마티카 : 톰 카바나의 편지와도 일맥상통하는 군. 점점 그가 현자로 보이기 시작했어.)

그때엔 이 말이 대수롭지 않게 들렸습니다. 우리 회사 직원들 대다수도 자신의 유전자 메모리를 통해 과거로 돌아가보고 싶다는 말을 하거든요. 하지만 저는 그의 생각이 실현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앱스테르고는 아주 엄격한 심사과정을 실시하고 있어요. 물론 우리 회사에서 유전자 기증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퀀스를 배열하는 작업은 숙련된 전문가들이 전담합니다. 애니머스는 애들 장난감이 아녜요.”라고 말했죠. 제 설명을 듣고, 그는 다시금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유전자를 기증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존에게 제안해봤더니, 그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멀리 가버렸어요. 음식과 마실 것을 사지않은 채 가버렸더군요.

(그라마티카 : 지금 생각하면 애니머스를 사용하게 해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네. 유전자 기증을 거부한 이유도 아마 그가 최초인류의 유전자를 갖고 있어서겠지.)

두번째로 그와 얘기할 기회가 있었던 건 회의라기보다는 놀러 나가면서였어요. 늦여름 몬트리올에서의 토요일이었고, 저는 셔브룩 쪽으로 향하던 중이었어요. 단골 카페에 들러 마실걸 좀 사자고 생각했죠.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동안, 존도 그 카페에 있는걸 발견했어요. 카페의 구석 자리에 혼자 않아서 소형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어요. 얼굴이 무척 상기되어서는 눈물을 흘렸죠. 가까운 지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방금 들은 것 같은, 넋이 나간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때때로 그를 살피며 그를 기다리다가, 그가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화상채팅 아니면 음성채팅인 것 같았어요. 이것부터가 좀 이상하지만, 그가 말하는 방식도 아주 수상해 보였습니다. 그의 표정은 마치 아주 고통스러운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제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대화의 내용은 희열에 차서 행복해하는 내용이었거든요.

(그라마티카 : 현자가 ‘아이타’인 걸 감안한다면, 그의 아내 유노와 대화한 게 아닌가 싶네. 사랑하는 마누라랑 대화하는 거니 당연히 행복하겠지.)

인사를 건네려다 말고 난 커피가 나오자마자 들고 나가기로 마음먹었어요. 하지만 그가 뭘하고 있는건지 한번 더 훔쳐보고 말았습니다. 그때 돌아보지 말았어야 하는거였어요.

뒤돌아봤을때, 존이 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의 붉게 상기된 얼굴은 아무런 감정이 없었고, 무표정하게, 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전 빠르게 카페를 빠져나왔어요.

(그라마티카 : 아내 유노랑 대화하는 걸 자네한테 들켰나 싶은 걸거야.)

그 다음 주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을때, 그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태도로 제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우리 둘다 그때 카페에서 마주쳤던 이야기는 하지 않았죠. 그후 우리가 얘기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요. 마지막으로 봤던 건 지하 벙커에 있는 헬릭스 서버실 밖에서였습니다. 스파이 행위 혐의를 받고 구금된 직원에 관해 얘기했었어요. 그후 존을 다시는 만나지 못했고, 얼마되지 않아 그가 사망했어요.

이러한 내용 외에는, 일반적인 사항밖엔 말할 게 없어요. 존은 좀 특이한 사람이긴 했지만, 이곳의 기술 담당 직원들이 다 좀 괴짜들이잖아요. 그들과 크게 다를바는 없었습니다. 혼잣말로 중얼대는 모습을 자주 봤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본 적이 없어요. 오만하고 잘난척한다는 평을 들었지만, 이것도 그의 직무상 일반적인 특징이었고 존의 경우 유능하기까지 했으니 좀 거만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의 기술적 역량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서 우리 회사의 고위 직책 기술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어요.

이 외에 다른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그라마티카 : 충분하다 못해 엄청난 정보를 르메이 씨를 통해 얻은 것 같소. 고마워요.)

멜라니 르메이 드림
앱스테르고 엔터테인먼트 C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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